┎thought

극장에서

약간의 거리 2005. 5. 10. 15:20

 

극장에 들어온 남녀가 싸운다.
잘은 모르지만
남자에게 어떤 여인에게서 전화(혹은 문자)가 온 모양이고, 그걸 여자가 알게 된 거다.
여자가 누군지 물었는데 남자는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 끝까지...
계속 다투다가 영화가 막 시작되기 전 여자가 일어서 나가버린다.

태연한 듯 앉아서 팝콘을 먹던 남자가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조용한 극장 안이라서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다.

난감해 하는 말투로 어쩌면 좋겠느냐고 한다.
친구가 무슨 묘수를 알려주지는 못한 것 같다.

친구와 전화를 끊은 남자가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남자는 여자에게 다시 들어오라고 한다.

아까부터 남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 팝콘이 넘어가냐?

- 영화가 보고 싶냐?


"저기요... 저 여자분이랑 지금 헤어지실 거에요? 아니면 따라 나가세요. 여자보다 16,000원이 더 아까우세요?"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남자는 세 번 정도 여자와 통화를 했다.
불이 꺼졌다.
영화가 시작됐다.
여자는 들어오지 않았고, 남자는 일어서지 않았다.

 

 

반대 편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전화기를 연다.

전화기 창에 불이 들어와 자꾸만 신경이 쓰신다. 짜증이 난다.

이번에는 그 남자의 일행이 전화를 받는다. 영화보는 중이란다. 2시간 후면 끝난단다.

이 영화는 2시간 20분짜리다.
잠시 후, 아까 그 남자... 또 전화를 받는다. 이번에도 역시 영화보고 있단다.

나도 모르게

"으휴~ 진짜!" 하는 소리가 나왔다.
옆자리 남자가 흘끔 내 눈치를 본다. 자기 전화기를 슬그머니 감춘다. 그럼에도 그 남자의 전화기 불빛은 2시간 내내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전화기 수신이 아주 잘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불빛이 쉴새없이 깜빡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여전히 오지 않는다.
남자는 다시 전화를 건다.
본인이 따라나갈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이 남자가 전화하는 건 하나도 짜증스럽지가 않다.

극장안에 전파차단기를 달았으면 좋겠다는 조금 전 생각이 잠시 누그러질만큼 나는 지금 이 커플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

짜증을 가져오지 않는 관심...

 

 

 

내 좌석은 2층의 첫 줄.

극장 문을 들어서면 누구나 내 앞을 지나가야만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된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람들이 띄엄띄엄 입장을 한다.

평소 같으면 왜 불이 꺼진 뒤에도 입장을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폭발지경에 이르렀을 생각이 오늘은 잠잠하다.

영화에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역시나 들어오는 사람을 빠짐없이 흘끔거린다.

 

이번에도 여자는 아니다.......

 

 



얼마가 더 지난 후에 여자가 들어왔다.
미안하다며 줄줄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 여자에게 마음으로 말해주었다.


"잘 했어요. 자존심은 이럴 때 세우는게 아니에요."

 

이제서야 나도 편안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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