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드라마 <나빌레라> 너도 날아오를 수 있어

약간의 거리 2021. 4. 7. 15:55

언젠가부터 드라마 덕후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름 드라마에도 취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취향에 따른 선택이 가능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마치 영화관이 멀티플렉스가 되면서 상영해 주는 것만 봐야 하게 된 것처럼.

 

그중 최근에 요즘 보기 드문 착한 드라마를 발견했다.

tvN에서 방영 중인 <나빌레라>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냥저냥 어쩌다가 보거나 잠깐 보는 거였는데

70대 노인 덕출이 발레리노 채록과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이 조금씩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 거참, 사람들 되게 냉정하게 말하네.

하는 혼잣말이 나올 만큼,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차갑게 대화한다.

그건 사람들이 차가와서가 아니다. 그들 모두 따뜻한 피가 흐르는 마음 깊은 곳에 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막상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때는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 드라마 속에서 어떤 차가운 말도 따뜻하게 품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따듯하지만, 그래서 따끔한 충고에조차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그런 사람이지만 어제는 특히나 그랬다.

채록을 다치게 하고 혼자 숨어 괴로워하는 호범을 찾아가서는

 

- 너도 날아오를 수 있어. 그러니까 끝까지는 가지 마.

하고 말해 준다.

우리는 어쩌면 잘못 된 줄 알면서도 그걸 선택할 때 '어쩔 수 없다고. 이제는 어쩔 수 없어졌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 누군가 덕출과 같은 말을 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화살을 쐈는데, 어느 순간 사실 그것이 화살이 아니라 부메랑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후회하며 돌아서고 싶지만 너무 멀리 와 버렸다고, 돌아갈 길은 너무나도 아득해서 주저앉아 버렸다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직은 너도 끝까지 가지 않았어. 지금이 끝이 아니야. 이제라도 돌아서면 돼'라고 말해주는.

그래서 덕출이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인 줄 아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하는 말이 다시 한번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