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심리학

비가 올때 어떤 신발을 신나요

약간의 거리 2020. 5. 27. 16:45

다이어트를 위해서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작심삼일이라고 정말 딱 이틀 참아 보고 끝이나 버렸다.

더구나 어제는 엄마가 낙지를 데쳐놨다면 먹지 않겠다고 하는데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막 먹기 시작하는데 도착한 동생은 "샹그리아는 이럴 때 안 먹고 언제 먹어?" 하더니 냉장고에서 지난 주말 사다 놓은 샹그리아를 꺼내왔다.

다이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적당히 먹었어야 하는데 낙지 세 마리와 목삼겹까지 구워서 샹그리아 한 병을 말끔히 비우고 나니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힘든 지경이 되어버렸다.

소화를 위해서 좀 걸을까? 하는데 비는 또 왜 이렇게 쏟아지는지......

잠시 망설임이 있었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같이 나서는 동생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각자의 회사 이야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로 비는 잊고 걷다가 운동화 끈이 풀린 걸 알게 됐다.

 

- 잠시만, 나 운동화 끈 좀 묶을게

- 어, 이렇게 비 오는데 하얀 운동화를 신고 온 거야?

- 응. 비 와서 신은 거야

- 비 오면 그 하얀 운동화가 더러워질 거 아냐

- 그래도 얘는 비가 안 스며들잖아

- 비 올 때는 이런 걸 신어야지

 

하면서 자신의 짙은 남색 슬립온을 들이민다.

 

내 흰색 운동화
동생의 것과 비슷한 슬립온

 

- 하지만 그러면 비가 새잖아

- 그러니까 난 양말을 안 신었지

- 발 젓는 거 싫어. 신발은 빨면 되잖아

- 언니는 자기 발이 더 소중하구나

- 헐~ 나 그런 이야기 회사에서도 진짜 많이 들어. 무슨 이야기만 하면 마무리는 '사람이 참 일관되게 자기중심적이네'라고 하는데

- 자기가 중요한 게 좋지.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남도 위할 줄 아는 거야

- 맞아, 맞아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남도 위할 줄 아는 걸까?

죽을 날짜를 정해 놓고, 어떤 방법으로 죽을지 계획을 하고, 가끔은 자해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어느 날 물었다. "선생님, 제가 비공개로 우울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거기 사람들은 다들 언제 죽을지 그런 계획을 갖고 있거든요. 근데 다른 사람한테는 엄청 칭찬하고 격려해 주고 예쁜 말만 하고 그래요. 자기 자신한테는 혹독하면서 남들한테는 왜 그런 걸까요?"

나는 "너는 어떤데?" 하고 물어봤다.

"저도 그래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좋아 보여요. 그런데 좋아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거든요."

"그렇구나. 자기 자신에게는 상처를 입히면서 남은 엄청 귀히 여기는 구나. 정말 왜 그럴까?"

한 주일이 지나고 아이가 다시 말했다.

"선생님, 이유를 알았어요.  그게 사실은 자기가 받고 싶은 걸 그 사람한테 해 주는 거였어요."

 

자기를 위하면서 남도 위할 줄 아는 사람은 진정 건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기를 위할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자기를 어떻게 위해 주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자기 자신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생명이,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렇지만 자신은 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아직까지 아무도 자신을 귀하게 대해 준 적이 없어서 그렇다.

 

어제 아침에 뉴스를 보다 보니 어떤 어머니가 놀이터에서 자기 아이를 때리고 도망가는 아이를 차를 몰로 쫓아가 그 아이의 자전거를 받아버렸다. 내 아이 때리고 도망가는 아이 미운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전거를 자동차로 들이받아야 하는 정도의 일인지는 동의가 되지 않는다.

 

누군들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예쁘지 않은 아이가 없다.

나를 귀히 여기듯, 내 자식 소중하듯, 남도 그렇게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귀하게 대해 준다면 그 사람에게도 그렇게 돌려주다. 설령 그 사람이 손사래를 치며 '아니 나는 괜찮아'라고 말해도 꼭 그렇게 귀하다, 예쁘다, 소중하다, 해 주자. 그 사람은 다만 아직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게 내 옷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절대 당신의 호의가 싫어서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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