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드라마 <하이 바이, 마마>는 '공동묘지 가봐라, 핑계 없는 무덤 없다!'라는 오래된 우리말을 모티브로 만들진 듯한 드라마다. 그래서 주인공인 김태희뿐 아니라, 각자의 사연 때문에 저승에 올라가지 못하는 많은 귀신들이 등장한다. 또 갑작스럽게 가족이 죽어버린 남은 사람들이 나온다.
귀신은 각자 사연이 있다. 그러니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귀신으로 떠돌고 있는 핑계가 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이승이 원래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사는데 이유나 핑계는 없다.
드라마에서 귀신들의 사연은 빠르게 소개가 된다. 나이가 들어 죽은 귀신들은 대부분 남아있는 자식이 눈에 밟혀서다. 자식이 결혼하는 것만 보면, 자식이 000하기만 하면. 뭐 그런 핑계들로 저승에 가지 못한다. 자살한 아이는 부모한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고, 초등학생 아들만 남기고 한꺼번에 죽게 된 일가족은 너무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어버린 아이가 크는 걸 지켜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김태희도 그렇다. 임산부였던 그녀는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게 되면서 태중의 아이를 출산하고 죽는다. 아이가 웃는 것만 보면, 아이가 말하는 것만 보면 하다보니 어느새 5년이라는 세월을 귀신으로 살게 됐다. 귀신이 된 그녀는 그 5년 동안 남은 가족들 곁을 돌며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켜보았다.
그녀의 남편은 처음에는 그녀를 따라 곧 죽을 것 같은 위험한 상태였지만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새로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그녀의 아이는 새엄마가 엄마인 줄 알며 잘 크고 있다.
오랫동안 절친으로 지내온 언니는 그녀의 생일이면 좋아하던 안주와 맥주 한잔을 차려 놓고 그녀를 기억하지만,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부모님은 손녀가 보고 싶지만 새 장가 든 사위를 찾을 수 없어 모른 채 발을 끊고 살고 있다. 아버지는 가끔씩 어린이집을 가서 손녀를 몰래 보고 오지만 그럴 때마다 부인에게 들켜서 혼나기 일쑤다. 그녀의 엄마는 남편보다는 좀 더 매몰차다. 혼자서는 절에 가서 여전히 불공을 드리지만, 손녀가 보고 싶은 것도 잘 참고 있고 남들이 볼 때는 그냥 참 정 없고 차가운 사람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 밑에서 언니를 잃은 동생은 눈치만 빨라졌다. 엄마, 아빠의 작은 신경전도 예민하게 알아채지만 그저 철없는 막내 노릇을 하며 산다.
드라마를 처음 볼 때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다. 남주인 강화가 부인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가면서 '나는 행복합니다'하는 배경음악이 흐르는 차안에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우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가족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세월호 유족도 그렇고, 자살유가족들을 만나봐도 그들은 괜찮으면 괜찮아서,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충고, 조언을 듣게 되고 그게 너무 힘들다고 한다.
- 이제 그만 잊어
- 이제 살만해 졌나봐
- 이제 잊을 때도 됐지
그래서 웃어도 죄인, 울어도 죄인이 된다.
강화는 여전히 수술을 못한다. 그것마저도 하게 되면 자기가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다고 했는데 죄책감과 원망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인이 응급실에 실려왔을 때 수술 중이어서 바로 와보지 못 했던 '그때 내가 바로 연락이 되었더라면'하는 죄책감과 아이를 살리고 자신이 죽는 선택을 부인에 대한 원망. 그런데 죄책감도 원망도 풀어놓을 곳이 없다.
현정 언니는 강화의 결혼을 허락해 줘서 절친인 유리한테 미안하다. 그렇지만 강화를 위해서는 그게 옳은 선택이었고, 그 미안함을 대신해 나라도 유리를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해마다 그녀의 생일을 챙긴다.
만삭인 임산부가 일하러 가겠다는 데 끝까지 말리지 않았던 엄마는 사위한테도 미안하고, 손녀한테도 미안하고, 무엇보다 죽은 딸에게 미안하다. '내가 끝까지 말렸더라면'하는 죄책감. 그래서 아이 낳고 미역국도 못먹고 죽은 딸을 생각하면 미역의 '미'자도 보고 싶지 않다.
학교 끝나는 자신을 데리러 오다가 학교 앞에서 엄마, 아빠, 누나가 모두 죽는 장면을 목격한 필승이 역시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잊어갈 때 슬펐다. 그렇지만 가장 힘든 건 잊지 않는 거다', 라는 유리의 말은 조금 위로가 된다.
내가 원망하고 싶은 사람,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마음들을 모두 가슴에 묻어두면 우리는 절대 괜찮을 수가 없다. 그런데 괜찮지 않은 건 또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봐 감춰야 하니 '괜찮지 않음 X 2'가 되어 버린다.
- 괜찮지 않아.
라고 말해도 괜찮다. 아니,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만 괜찮아질 수 있다.
그리고 괜찮아지는 것은 미안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망각하고, 또 비슷한 아픔에도 면역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또 아파할 수 있다. 그러니 괜찮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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