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me before you>를 읽다가

약간의 거리 2018. 6. 26. 19:54

<me before you>- 조조 모예스

 

이 소설의 시작은 그저 그런 로맨스 소설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주인공 남과 여의 만남도 예측할 수 있고 당연히 둘은 사랑에 빠질 거고...

뭔가 좀더 계몽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람은 돈만으로 살지 않는다.'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특별한건, 어쩌면 내게는 특별한 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눈을 감으시던 날의 장면 하나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

결국 병실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응급실에서 눈을 감으셔야 했다는 게 지금에서야 새삼 마음이 아프다. 그때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의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는 하나도 예측하지 못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이미 마지막 순간에 심박제세동기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합의해 놓으셨었고 그래서 특별한 의료기기 같은 것을 장착하지 않고 바이탈사인(?)을 보여주는 기계만 있었는데, 나는 그게 어떤 모습일때 사람이 위험한 건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날 아침, 내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아마도 3일째 응급실에 계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잠이 들어 있었고, 엄마는 자리에 없었다. 바이탈사인을 보여주는 그 기계는 그렇게 요란하지는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내가 그 기계의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던 건 아마도 아버지의 잠든 모습이 너무 고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이 참으로 평안해 보였는데, 나는 그게 정말 잠이 든 건지 궁금해서 얼굴 가까이 고개를 들이댔다가 떼었다. 호흡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사람이었고 얼마만에 겨우 곤히 잠이 들었는데 섣불리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찾기로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응급실 바깥쪽 대기실에 딱딱한 나무의자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대기실은 아마도 TV가 켜져 있었던 것 같고, 의자는 등받이가 있는데 예전 기차역 대합실 같은 곳에 놓여진 갈색의자였는데 반짝이는 코팅이 된 면에는 아마도 제약회사의 이름 같은 것이 써져 있었다. 나는 유리 문 안쪽에 잠든 엄마를 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깨우지 않기로 결정을 하고 다시 아버지에게로 왔다.

- 정말 주무시는게 맞나?

그저께 밤에 우리는 병원에서 돌아온지 채 2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임종을 준비하라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허둥지둥 달려갔었다.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고, 신부님께 급히 연락해 병자성사를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병자성사를 받는 모습을 꼭 지켜보고 싶었는데 기저귀를 사러 나가는 바람에 보지 못했다. 내가 허겁지겁 응급실을 나서 병원 코너를 돌 때 택시 한대가 와서 섰고, 거기에서 우리 주임신부님이 내리시는 모습을 봤다. 나는 아주 가까운 곳에 편의점이 열려 있어서 신부님이 병자성사를 끝내기 전에 병원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혼자서 계속 중얼중얼했지만 내가 돌아왔을 때 이미 신부님은 계시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아버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기분좋은 모습을 보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회사를 결근했는데 병색이 완연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웃고 말씀도 잘 하시는 아버지와 같이 있다는게 왠지 내가 거짓말을 한 사람 같은 죄책감도 들어서, 오늘은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 출근을 하려는 참이었다. 출근하기 전에 잠시 병원에 들러 아버지한테 인사를 하고 상황을 봐서 좀 일찍 퇴근을 해야지 하며 병원을 들렀는데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자고 있고, 나는 어찌해야할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냥 회사를 가야하나.. 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는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왔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가 정말 주무시는 건지 잘 모르겠다며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엄마가 아빠를 깨워보니 일어나지 않았고 급히 간호사를 불렀다. 누군지 모를 병원 사람들이 왔고, 언제부터 이랬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했고, 내가 왔을 때부터 그랬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더니 왜 사람을 부르지 않느냐고 긴박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주무시는 줄 알았다는 내 말이 그 여자는 바이탈 사인이 나오는 기계를 가리키며 게 어딜 봐서 자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몰랐다고 말을 했던 것 같고, 아무말도 못했던 것도 같다. 어떤게 이상한 거고, 어떤게 안 이상한 건지


미 비포 유

 

네이선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세상의 돈을 모조리 갖다준대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겁니다.

 

여기서 자다 보면 그 친구가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소리를 듣게 될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꿈속에서는 여전히 걸어 다니고 스키를 타고 별별 걸 다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짧은 몇 분 동안, 그 친구의 심리적 방어막이 걷히고 진심이 다 드러나서, 말 그대로 다시는 그렇게 살수 없다는 걸 견딜수가 없는 거에요.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 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 글을 쓰다가 만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

그새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그날 새벽 그렇게 내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코드블루 상황이었던 거고, 엄마랑 아빠는 이미 CPR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해 놓은 상태였고, 우리에게도 다 설명했지만 나는 TV에서 흔히 보이는 전기충격 같은 거 한번도 해보지 않고 그냥 아빠를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말도 안된다, 말도 안된다... 했지만.

지금은 안다.

CPR 몇번으로 다시 심장이 뛴다해도 얼마가지 못했을 거라는 걸

그때 아빠는 몸에 근육이란 근육은 이미 다 써버려서, 온통 근육만으로 되어 있는 심장이 뛸 수 있을 만큼의 근육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