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돌이킬 수 없이 서운한 일

약간의 거리 2013. 7. 10. 11:45

언젠가 한 번은 이 일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달꽃같이 웃는 언니를 한 번은 볼 수 있을까요?' 하는 후배의 글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살면서 돌이킬 수 없이 서운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해 여름에.

장대비가 지루하게 2주를 쏟아졌고, 그 비가 그칠 무렵 다시 출근을 시작해서는 4,5년에 한번씩 연락하는 친구의 느닷없는 연락과 그 친구에게 진탕 욕을 먹기 전까지 나는 그 사실을 몰랐었다.

- 너 무슨 일 있었어?

- 응... 왜?

- 메신저 왜 계속 로그아웃이었어?

- 응.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런데 연락도 안했냐고로 시작해서 한참동안 진탕 욕을 하고 난 친구는 어쨌거나 많이 힘들었겠다며 당장 밥을 먹자고 해서, 아마도 하루이틀 상관에 우리는 점심을 함께 했다. 그친구는 회사가 서빙고동이었고, 나는 혜화동이어서 우리는 나름대로 중간지점을 의논해서 이태원 즈음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차를 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는 나의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아리같은 모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일대일이거나 서너명씩 아는 사이들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나는 가장 먼저 회사에 전화를 했고, 내가 너무나 존경하고 좋아하는 전 직장의 상사에게 전화를 했고, 다음으로 성당에 연락을 했고,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10년이 넘도록 모여온 모임에 연락을 했고, 그리고 5명이다가 1명은 수녀님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4명이 된 대학친구 중 한 명에게 전화를 했고, 중학교때부터의 단짝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나는 기억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 딱 거기까지만 연락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서빙고동의 친구처럼 나와 일대일로 알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연락이 가지 않았다. 그때의 마음이 더 이상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만큼 연락을 한 것도 너무 많이 했다 싶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나고 친구에게 욕을 먹고, 친구가 사준 밥을 먹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꼬박 만 하루 동안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울고만 앉아 있었는데도 내 아버지의 장례식에 와서 위로를 전하고 간 사람과 전화를 한 사람, 장례식장 앞으로 나를 불어내서는 돈봉투를 쥐어주고 간사람, 영정 앞에 서서 신발도 벗지 않고 인사를 전하고 간 사람, 국을 한 그릇 더 먹은 사람까지 모든 것이 다 세세하게 기억이 났다. - 물론 지금은 너무 많이 세월이 흘러서 많이 잊혀졌다 - 그리고 마땅히 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랬는데 오지 않은 사람에게 서운함이 생겼다.

 

나에게 달꽃같은 웃음이라고 말한 친구는 그때 막 둘째를 낳아서 애 둘을 혼자 집에서 보며 전화를 했었다. 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그래서 나는 참 고마웠다. 그때까지 나는 이렇게 상을 당한 사람에게 내가 직접 가볼 수 없을 때, 몹시 미안하기는 했지만 전화를 선뜻하지는 못했다.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내 볼일 있다고 전화를 한다는 것이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람도 전화 받을 정신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불꽃전기를 타고 흘러와서는 뜨겁게 마음을 위로해 준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고마운, 나에게 달꽃같이 웃는다고 말해 준 친구를 그 이후에 한번도, 아니 딱 한번 만났다.

이유는 그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와 나의 연결고리인 그 모임에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서운함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그 모임과 함께 했으니 거의 20년이 가까운 세월을 그 모임과 함께 했다. 그 사이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 아버지의 장례가 그 모임에 들어간 후 처음으로 갖게된 경조사라는 것이었다. 44명의 사람 중 3명이 다녀갔는데, 두 사람은 임원이었고, 모임회비에서 지급되는 경조비 전달을 위해 왔던 것인지  신발도 벗지 않고는 돌아갔다. 그리고 또 한사람 역시 어떤 이유로 앉지도 못하고 돌아갔는데... 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충분히 받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그간 내가 이 모임과 그 사람들에게 쏟아부었던 애정만큼이나 크게 느낀 섭섭함을 씻어줄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리고 두서너해 즈음이 지났을 때, 달꽃같이 웃는다고 말하는 그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딱 한번인가 모임을 갔던 것 같은데...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여전히 내가 그녀로부터 오는 모임 연락을 받고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43명의 사람 중 나와 같은 서운함을 겪는 사람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저런 사정들이 있을 수 있고, 내가 경험을 해 봐도 정말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 그런데도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는 것을 어쩌나... 이제는 사실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혼란스럽고, 이유도 정확한지 아닌지 알수가 없는데도, 나는 여전히 서운하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누구든 어떤 일이 있더라고 함께 하고 싶은 순간이 있는거고

그 순간에 나를 외면한 사람은 돌아보고 싶지 않기도 한 법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바로 내아버지의 장례식이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