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가끔... 그러니까 1년에 한번 정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을 때가 있다.
그저, 단지 전화가 걸고 싶은 것 뿐이다.
문득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건 어쩌면 외로워서일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우울에 내가 공격당해서일 수도 있고, 너무 심심해서일 수도 있다.
오늘은 아마도 사무실에 혼자 있었고, 시험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공부는 하나도 안 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긴장감은 생기지 않고 정체가 분명한 불안이 공격해 와서 였을까?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핸드폰의 주소록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우선 너무 비즈니스와 관련된 사람이나 기관, 혹은 음식점 전화번호들만 주루룩~~~ 나와서 씁쓸했다. 최근 내 삶의 현주소랄까?
예전에는 친구, 선배, 후배, 동료,... 뭐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던 시절에도 전화할만한 사람 하나를 찾아내는 건 정말 힘이 들었다.
'얘는 바쁠거고, 얘는 너무 말이 없고, 얘는 너무 자기 말만 할 것 같고, 얘는 애기 때문에 그렇고, 얘는 당장 만나자고 할거고,....' 그런 무수한 이유들로 겨우 한 사람을 찾아내는 일로 에너지를 쏟다보면 이내 전화하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무수히 많은 주소록에서 친구를 골라내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웠다. 친구 이름 찾아내기... 휴~~~~
그러다가 겨우 한 친구를 선택했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도 신호음이 가는 동안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친구. 그런 친구는 우선 전화를 받았을 때의 첫 인사가
- 어, 웬일이야?
라거나
- 어머, 네가 전화를 다하고 ... 무슨일 있어?
라거나
- 미안, 내가 다시 전화 해줄께.
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친구다.
그런데 내가 막 전화를 걸었을 때 들려온 소리는
-방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하는 영혼이 담기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때 나의 반응은 '그럴 줄 알았어. 여적지 011일리가 없지. 그럼 뭘로 바꼈을까? 나처럼 앞에 2가 붙었을까? 2를 붙여서 걸어볼까? 아냐, sk 쓰던 사람들은 9나 8로 바뀌던데... 8을 붙여볼까?'
그래서 나는 정말로 010-8***-****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별표인 이유는 지금 번호를 외우지 못하기 때문이지, 개인정보 보호 차원 같은 건 아님). '모르는 번호면 받지 않을 텐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래서 나는 오늘 친구 한명을 놓쳤다는 걸 알았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집전화번호 같은 건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친구의 집 같은 건 더더욱 모른다. 친구네 집에 가서 놀던 나이는 이미 아주 오래전에 지나가버렸다.
핸드폰 번호가 바뀌면, 쓰던 핸드폰을 분실하면,
이제는 기억도 지워져버린다.
우리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칠 확률은 거의 없으니까, 나는 아마도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럴 때면 나의 친구관계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일대일 관계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참 안타깝다.
그래도 나는 그 친구의 번호를 지우지는 않았다. 또 아주 많이 시간이 흐른 뒤에 이번에는 앞에 9자를 붙여서 다시 걸어 볼지도 모를 일이다, 그 사이 내가 전화기를 바꾸고 주소록의 사람들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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