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본디 "좀"-이거야, 내가 날 말하니까 그런거고 남들이 말할 때는 그보다는 조금 더 많이- 못된 성격이다. 불친절하고, 남의 일에 무관심하며, 낯선사람과 말 섞는거 완전 싫어하고, 실은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만나도 먼저 아는 척은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씩 그러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다.
어젯밤만해도 그렇다.
늦은 밤, 1호선을 탔다. 노량진에서는 가장 뒷칸에 타야 출구랑 가까운데 갈아타다보니 중간쯤에 타게 됐다.
'조금 있다가 뒤쪽으로 걸어가야지!' 생각하며 문 앞에 기대 서 있었는데 종로3가역에 도착할즈음 누군가가 나를 톡톡 치는 거다.
돌아봤더니 뒤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자리가 비었으니 앉으라는 신호를 주셨다. 나는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시 후 이 할아버지가 나를 또 톡톡 치더니 앉으라는 신호를 다시 보내오신다.
열번째 칸으로 갈건데... 하고 말을 하려다가 자꾸만 앉으라고 하시는데 웬지 예의가 아닌거 같아서 옆자리에 앉았다.
종로3가 역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내려서 그 할아버지 옆으로 자리가 쭈~~욱 비어 있었는데 멀찍이 앉는게 그냥 좀 또 미안한거 같아서 옆자리에 앉았다.
이때, 나의 성격대로 나타난 하나는 사람에 무심하다는 거, 그래서 나는 종로3가에서 앉아 두개의 역을 더 갈때까지 이 할아버지가 맨발의 노숙인이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다.
또 하나는 내가 가끔하는 이런 미친짓이지, 남의 호의를 정말 호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모른척하면서 그냥 내가 가고자 했던 10번째 칸을 갔을텐데.. 그때는 나는 왜 그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건지...
아무튼 술이 거하게 취한 할아버지는 반병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앉아계셨는데 뭐라고 뭐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셨다.
잘 먹고, 잘 놀다가 집에 가는 길이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혼자가 되고 부터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는 할아버지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소리도 작았고, 발음도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고, 여전히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래도 자꾸만 뭐라고 하시는 할아버지는 연신 기분이 좋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할아버지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내... 이 할아버지 계속해서 나에게 이상한 말을 하면서 추근덕대고 있었던 거다. 나는 참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제서야 할아버지를 좀 훑어봤더니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에다가 옷도 너무 지저분하고, 아무튼, 잘 안봐도 사람들이 옆에 앉기 싫어할 몰골이신 거다.
슬쩍 손을 내쪽으로 뻗는 할아버지가 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하지 마세요" 하고 말했다.
그래도 이 할아버지 뭐가 그리 좋기만 한 건지 계속 실실 웃으며 내 눈치를 살핀다. 맞은편에 아저씨 한 분이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내쪽을 흘낏 쳐다보신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뽀뽀 한번만 할께"
내원참.
"그러지 마세요. " 하면서 나는 할아버지를 좀 무섭게 한번 노려봐주고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또 내 옆자리의 여자가 불편해질것 같아서 그냥 앉아 있기로 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난 너무 어이없고 웃긴거다.
나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이상한 말을 하는 할아버지를 나름대로 잘 다스리고 있는 거며, 생전 처음보는, 그리고 평생 다시 볼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 여자를 걱정해서 여기에 계속 앉아있겠다는 건지도 그렇고.
다시 또 볼 수 있어?
그럴 수도 있겠죠~!
어디서?
(잠시 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지하철에서 만났으니까...)
지하철에서?
(하고 대답했다)
지하철?
네!
갑자기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맞은편의 그 아저씨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깨를 한번 으쓱해 주고는 받지않는 전화기 저편 상대에게 속으로 화를 한번 내고는 아저씨한테 문자를 찍는다.
답이 없다.
완전 짜증난다.
할아버지가 슬쩍 팔을 들어 올린다.
"하지 마시라고 했죠.. 이 넓은 지하철 의자에 혼자 앉아서 가고 싶으세요. 사람들이 할아버지 다 피하면 좋아요?" 나도 모르게 버럭하고 훈계를 하는데.. 그래도 저 할아버지는 웃기만 한다.
에휴~ 한 숨 한번쉬고,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다.
맞은편 아저씨는 어느새 DMB를 켜 들었다. 이어폰을 끼고 DMB에 열중한다. 아마도 이제 나를 걱정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하철이 한강다리를 건널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량진에 도착하기 전에 10번째 칸까지 걸어가야 하니까. 플랫폼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가는 건 정말 싫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할아버지를 돌아보며,
"저 이제 가요." 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 오늘 미쳤나봐. 대체 왜 갑자기 남의 호의에 호의롭게 대하는 거야.
역시 안하던 짓을 하면 골치아픈 일이 생긴다니까.
그냥 하던대로 하고 살아야지.
내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얼마 안됐을 때도 이런 비슷한, 그러니까 내가 평소하지 않던 짓을 한 적이 있었다.
치킨을 사러 갔는데 아줌마가 완전 뚱~ 해가지고 오는 손님마다 완전 불쾌하게 만들어서 돌려보내고 있는 거다. 닭이 익기를 기다리다가 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아줌마를 보며
-하루종일 서서 일하시니까 너무 힘드시겠어요
하고 말을 건넨거다. 아줌마는
-네...
하시더니 사실은 몸이 아픈데 알바까지 안나와서 너무 힘이 들어서 그렇다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힘드시겠다. 얼굴 색도 안 좋아보여요. 의자 놓고 앉아서 하시면 안되나...
하며 맞장구를 친거다.
집에 와서 그 이야길 해 주었더니 모두들 네가 웬일이냐며, 손님한테 그딴 식으로 한다고 짜증나서 그냥 왔다며 빈손으로 올 인간인데 별일이라며, 혼자 살다 오더니 사람이 좋아졌다고들 난리였는데....
사실 나는 그때 막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말은 내 짜증하고는 상관없이 튀어나간거다.
그래서 말을 하면서도 '나 미쳤나? 나 왜 이러니...' 이런 생각을 했드랬다.
아무튼,
그럴 때 분위기 전환 시켜줄 만한 전화상대 한 명도 없고,
갑자기 삶이 참 꾸질꾸질하네.
그냥 본성대로 살자!
미친척 변하는 짓은 절대, 다시는, 하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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