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내가 알고 지낸 건 올해로서 만 12년이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를 싫어했다.
나는 그녀의 지나친 감성과 모두의 연인인 듯한 글과 말과 행동이 싫었고
그녀는 도도한 척 남에게 쉽게 친해지지 않는 내가 싫었다고 했다.
나는 그저 낯가림이 심했을 뿐이고
그녀는 그저 쉽게 맘을 여는 로맨틱걸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고
한때는 서로 다른 동네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먹는 생활을 했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녀와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것도 또 그렇게 친해졌던 것도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따라붙던 "특이해" 라는 것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랬다.
우리는 같은 모임에서도
그리고 각자의 생활 속에서도
주변사람들에게 종종 "특이하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는 조금 더 많이 들었고, 그 특이함의 강도도 조금은 더 높았다.
그런 그녀가
어찌어찌한 이유로 기억을 잃었고,
그리고 그로 인해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단지 어떤 시간대의 기억만을 잃었을 뿐 다른 것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논리로 고집을 부리는 것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 고집을 꺾지 않는 것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당당히 우기는 것
두 사람이 내 앞에서 다투고 있다.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A의 입장을 나는 너무나 잘 이해하겠다.
그리고 화가나는 친구의 입장도 나는 너무나 잘 이해하겠다.
하지만 A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거나, 행동을 했어도 아니라고 했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친구는 화는 나지만 그걸 드러내 놓고 표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야 한다.
A가 말한다.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 하지만 모른다고 했어야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녀가 잘못한 거잖아. 내가 이렇게 하는게 당연한 거잖아.
-아프니까. 자극하거나 흥분시키는 행동은 하면 안되는 거잖아.
"아프니까" 라고 말할 때 내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녀가 아.픈.가.'
그녀는 지금 먹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도, 화장을 하는 것 조차도
제재받거나, 이유를 설명해야 하거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평상시의 그녀라면
'암튼 특이해. 누가 말려!' 하고 넘어갈 만한 일들이 모두
'제 정신이 아니니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라는 표현들로 바뀌어버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원래부터 평범하지 않았고,
자기애가 강했고,
우기기 대장이었는데.
단지 그녀가 어떤 시간의 기억을 잃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이 비정상이 되어 버렸다.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에서
나는 그 하루 내내 너무 머리가 아팠고,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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