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또 다시 공항 미아될 뻔한 이야기

약간의 거리 2009. 5. 20. 06:48

미국 날씨는...

내가 공항을 떠나 블루밍턴을 돌아오는 순간, 개기 시작해 이미 떠났어야 하는 그 목요일의 남은 날들과 금요일까지 온종일 눈물나도록 맑았다. 때때로 스며드는 햇살이 너무 강해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질만큼 강하고 뜨거운 햇살이었다.

그리고 금요일 밤.

이 밤이 지나면 나는 다시 공항에 가야 한다.

왠지 정말 마지막인 것 같아 괜시리 잠을 설치고 있는데, 새벽 한 시가 넘어갈 즈음

창밖에 번쩍하는 불빛이 보인다.

밖을 내다보니 그냥 바람이 좀 분다. 하지만 블루밍턴은 언제나 밤이 되면 잠들 곳 없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순간 또다시 번쩍하는 불빛.

마침 컴퓨텨로 보고 있던 드라마 속에서 비가 내린다.

'혹시 드라마 속에서 번개가 치는 건가?'

되돌기를 해서 다시 보지만 번개가 치는 장면은 없다.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또다시 번개가 친다.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내 맑기만 하던 날씨가 떠나기로 한 날 아침부터 흐릿하게 비를 뿌리더니 결국 떠날 시간 즈음이 되어서는 벼락이 내리꽂혀 비행기를 취소시키더니,

공항을 떠나 다시 돌아오는 순간부터 '오늘 하루 완전 맑음'이던 날씨가 다시 떠나는 날 새벽이 되니 벼락이 친다.

걱정이 잠이 안 왔다.

새벽... 번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는 아침.

역시나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조금은 잘 맞는 일기예보를 본다. 밤사이 미국 중부를 휘감도 있던 썬더스톰이 동부로 이동하고 있다. 시카고와 인티폭을 지나 지금은 신시네티 즈음을 지나가고 있는 비구름.

'괜찮아 지겠지! 괜찮을 거야.'

친구, 친구신랑, 그리고 나...

우리 모두 말을 하지 않았지만 - 사실 믿지 않으면서도 두려운 마음은 있었다. 말이 현실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떠나던 날 친구가 내내 입에 달고 있던 말이 '우리 그냥 다시 차 타고 블루밍턴으로 내려올 것 같아' 였기 때문에 - 걱정과 염려의 마음을 조금씩 나눠 안고 다시 인디폴로 떠났다. '어쩐지... 내가 새 집을 보여 줘야 했는데... 그걸 보고 어떤 걸 계약해야 하는지 말을 해 주고 갔어야지. 아무래도 그래서 못 간거 같아.' 아이가 방학하는 열흘 쯤 뒤면 한국에 한달쯤 왔다가 다시 돌아가면 이사를 해야 하는 친구는 지금 집을 계약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 그래서 공항을 가기 전 우리는 몇 군데 집을 더 둘러 보고 최종 계약할 곳을 정하기로 했다. 집을 보고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내가 계산 할께' '무슨, 가면서까지 돈 쓰냐?' '응. 나 밥 사야 갈 수 있을 것 같아.' 아직은 간간히 내리는 비와 사라지지 않은 검은 구름. 그리고 여전히 말하지 않는 우리 각자의 염려.

 

그렇게 마지막 식사를 하고 공항을 향해 출발. 공항에 도착할 즈음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해가 비춘다. 검은 구름은 바람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와~ 나 오늘은 정말 갈 거 같아.' '그러게.'

일단 짐을 실으려 항공사 창구를 갔더니 지난번 공항 스캔들 때 호텔을 잡아준 직원이 있다.

- Hi, How are you?

- good. oh, are you STILL in here?

- Yeah

그리고 열흘 후면 만날 거라면 이제는 담담히 이별을 받아들이는 나와 내 친구와는 달리, 두 번째 이별에도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 딸과 이별을 하고, 예정시간보다 10분이나 일찍 이륙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서도 15분이나 걸리는 미시건 호를 무사히 건너 시카고에 도착한 시간은 내가 출발한 시간보다 10분이나 빠른 6시 5분이다.

 

 

새벽에야 출발하는 아시아나의 티켓팅 시간은 저녁 9시.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겨우 티켓팅이 시작됐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사무실에 몇 번을 들락거리는 직원이다. 대체 또 뭔일인가 싶은데 지점장이 따라나와 시간이 오래 걸리니 자기랑 이야기를 하잖다. 그리곤 대뜸 하는 말

-왜 지난번에 LA에서 비행기 안타셨어요?

-아시아나 직원이 출발지 변경은 안된다며 타지 말라고 했는데요.

-그때 날씨때문에 비행기를 못타서 놓치신 거잖아요

-네

-그런 경우는 AA에서 변경해 주면 타실 수 있거든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 직원이 절대 안된다며 AA에서 뭐라고 해도 절대 LA오지 말라고 했어요.

-네 아무튼 그리고 AA에서 티켓팅 변경을 안 해서 아직 LA 에서 인천으로 들어가는 걸로 되어 있으세요

-네? 프린트 보셨잖아요. 그게 제가 AA항공사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건데요. 분명 시카고 출발로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그때 통화한 아시아나 직원도 시카고 출발로 좌석 잡아뒀다고 했는데요.

-네.. 부킹은 분명 시카고로 되어 있는데 AA에서 LA출발로 되어 있는 티켓 변경을 안해서 지금 발권이 안돼요. 그래서 AA에 연락해서 변경해 달라고 하셔야 합니다.

-제가요?

-네

-왜요? 그때 예약을 할때도 저는 개입 안 했어요. 그냥 결과만 통보 받았고, 아시아나 직원이랑 AA직원이 통화해서 한 거에요. 그러면 아시아나에서 알아서 해결해 주셔야죠.

-저희가 전화를 계속 했는데 AA에서 받지를 않아요

-그럼 어쩌라구요? 저보고 지금 비행기 못 탄다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아니요.. 그런데 AA에서 티켓을 변경 안해주면 발권이 안됩니다. 그러니까 AA항공 찾아가셔서 바꿔오셔야 해요.

 

 

 

 

 

결국 국제선 터미널을 떠나 다시 AA항공이 있는 터미널 3번으로 갔는데 이미 9시가 지난 시간 AA항공 데스크는 모두 문을 닫았다. 다행히 귀퉁이 한 곳에 문제 있는 고객이 있는지, 아랍인 고객 여러명이 직원 한 명과 서 있다.

-we are closed

상기된 얼굴로 AA항공 직원이 먼저 말을 건넨다.

-I know but you have a fault for me

사실 이게 맞는 영어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의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는 거 넘 찔렸지만 이미 영업시간인 9시가 훨씬 지난 시간까지 문제가 있어 퇴근을 못하고 있어 몹시 짜증이 난 그녀의 표정과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강하게 어필하는 제스츄어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렸다. AA항공 직원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what?

이라고 했다. 나는 예약된 프린트물을 내보이며 다시 말했다. '이게 나의 예약 내용이다, 그리고 티켓 예약번호는 이것이다. 근데 하나는 출발지가 시카고고 하나는 LA다.' 그녀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어린아이처럼 입이 나와서는 키보드를 요란하게 소리내며 두들겼다. 그러면서 '네 예약은 문제가 없어.' 라고 말하는 거다. 난 어이가 없어서 다시 설명을 하려는데 그때 막 그녀는 나에게 티켓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됐지? 가봐' 이런 말과 함께. 나는 내가 준 프린트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두 종이의 티켓 번호를 비교해 봤다. 번호가 변경되어 있었다. 시카고 출발로 변경이 된 것이다. 나는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아 그녀를 쳐다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짜증난 표정에 왜 안 가는데?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you finished

성질은.. 잘못돼서 고쳤으면서 애시당초 문제 없단 소리나 하고. 그래서 나도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돌아나와 버렸다.

 

 

다시 국제선 터미털로 돌아가 아시아나 티켓팅 라인에 줄을 섰다. 매니저인듯한 여자가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are you OK?' 하며 말을 건다. 'yes, I'm OK.' 그래도 석연찮은지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더니 다가온다. 'are you really good?' 'actually I had a problem when I was tecketing. so... I come back this line.' 그녀는 내게 다시 혹시 그럼 한국어 하는 직원과 이야기 하고 싶냐고 묻더니 사무실에 들어가 좀전에 티켓팅 문제를 나에게 설명해 주던 직원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티켓을 발권 받았고, 시간은 이미 밤 10시 반. 2시간 후면 이 말 많고, 탈 많았던 길이 끊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나는 무사히 인천 공항에 착륙했다.

 

 

이것들은 내가 지난 며칠간 AA항공으로 발권 받았지만 사용하지 못한 티켓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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