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10시간 동안의 이야기: 라이프 인더 씨어터 에서 다크나이트까지

약간의 거리 2008. 8. 26. 01:04

사실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 보고 싶었는데 그날 연극도 예약이 되어 있었다는 걸 깜빡했다.

퇴근을 해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우선 <라이프 인더 씨어터>를 보러갔다.

6개월전부터 기다렸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벼르고 별러서야 겨우 보게 된 연극이다. 반드시 배우 장현성이 나오는 걸로 봐야한다고 우겨서 봤는데 극이 진행이 되면 될수록 선배 배우에게 몰입이 되는... 해서 라이프 인더 씨어터? 그런 뜻이었던거야? 내 인생도 결국은 연극이었어?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같은 분장실을 쓰는 선후배 연기자

처음엔 나도 선배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같은 말 반복, 반복. 내가 그때는 말이야... 하는 이야기. 선배의 말 한마디에 쪼르르 뛰어와 열심히 들어주어야 하는 후배의 모습. 때로는 선배가 닮고 싶고, 또 때로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감히 아니라고 말 할 수 없고. 친구도 만나고 싶지만 선배가 술 한잔 하자하면 거절 할 수 없고, 그건 선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울 것이 있어서라 생각 되기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후배는 성장한다. 후배가 선배가 되어가고 있을 때에도 선배는 여전히 그때의 그 선배 모습이다. 성장한 후배는 유명해지고, 바빠지고, 선배는 그런 후배가 대견하기도 질투가 나기도 그리고... 내 모습이 초라해지기도 한다.

나는 선배의 잔소리에 쪼르르 달려가는 후배의 모습에 웃다가 함께 찡그리다가 뿌듯하다가.. 그러면서 자꾸만 고개가 돌아간다. 선배는 뭐 하고 있지? 마지막에 눈물이 나올뻔하다가는 휴~하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 선배를 이해할 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가! 하다가 그래도 아직은 부정하고 싶으니까.

후배에서 시작해 결국 선배로 늙어가는 인생을 따라가 본 거라고 우겨본다.

 

무수히 많은 극중극 속에서의 배우들의 연기니.. 하는 이야기들은 접어둔다.

 

 

 

<고사: 피의 중간고사>: 연극보고 1시간 뒤

아니, 이게 왜 재미가 없다는 걸까? 난 제대로 무섭기만 하더만.

물론 시험을 보기로 했으면 끝까지 봤어야 했다.

그리고 첫 문제를 낼때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든 문제를 푼 뒤에 답을 알 수 있는 문제로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문제를 내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생각해 주자.

의문나는 건 정말 많다.

1번 수학문제의 답은 뭘까?

그해 봄 강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무식하게 소리만 지르며 폭력적인 선생님은 그냥 순수한 거고, 매너 좋고, 생각도 있어 보이는 선생님같은 선생님은 뒤가 구리게 설정이 되는 걸까?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엔딩크레딧에서 너무나 확~ 깨어나게 해 주는 바람에 완전 황당해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제대로 무서워서 너무 힘들었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 온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보고 나오면 기운이 없음)

 

슬픔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런건 따지지 않기로 했다.

 

 

 

 

<미이라3>: 앞 영화보고 30분 뒤

원래 절대 볼 생각 없었다. 너무 바빠서 도통 영화의 소식을 모르던 내가 월E가 뭐냐고 물었을 때 'AI 랑 비슷할껄'이라거나 'ET 아니에요?' 하고 말해주는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그냥 월-E를 봤을텐데...

사람같이 생긴 로봇을 만드는 것이나, 로봇에게 사람의 감정을 갖게 해놓고는 그것이 인간이야, 아니냐를 따지는 이상한 휴머니즘 영화는 별루라서... 단지 예매율이 높다고 우기는 미이라를 선택했는데...

진시황릉을 열고 들어간 후, 어찌어찌한 이유로 부모와 만나게 된 장면 이후로는 그냥 자버렸다. 다음 영화를 위해서는 자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잠깐씩 깨어나 옆자리를 흘끔거리며 정말 정말 열심히 보고 있는 녀석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따가 자면 안되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보는 거지? 하면서.

 

 

 

 

<다크나이트>: 앞 영화보고 40분 뒤

누군가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만 별로 인기 없다는데요, 왜 그렇죠?

글쎄... 제목에 배트맨을 안 넣어서 그런거 아냐? 왜 배트맨이라고 안 넣었지?

사실 배트맨 같은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다. 수퍼히어로가 나오는 모든 영화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을 포함해서 아무개맨이 아니더라도 수퍼히어로에 버금가는 인간이 세상을 구원하는 종류의 이야기는 다 별로다.

예전에 지구가 얼어버리는데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무슨 도서관 같은 데를 헤매다니고 하던.. 아무튼 그래서 결국엔 아들과 지구를 구하는 그런 재난 영화가 있었는데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그 영화 티켓을 끊어왔을 때부터 맘에 안들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너무나 감동했다고 해서 바로 안 만나버렸다. 난 제목도 생각 안나는데. 아무튼...

 

그러니까 크리스찬 베일이 나오지 않았다면 배트맨 비긴즈 같은 영화는 보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보니 장황해져 버렸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포스터를 보면서 참 멋지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잔혹극을 몹시도 싫어하던 때라서 감히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머시니스트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정말 볼품없이 비쩍마른 몸의 그를 보면서 왜 반했는지는 생각이 안나지만... 그만, 그 배우의 이름을 외워버렸다.

 

아~ 원래 이런 이야기를 이 영화에서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한번 방향이 어긋나면 되돌아 올 수가 없다.

 

삭제, 삭제.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지우고 싶지가 않다.

 

그러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은 조커와

웨인의 모습으로 그냥 멋있게 있어주었으면 좋겠는 배트맨의 이야기는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다음으로 미뤄야할 것 같다.

 

참, 제목에 배트맨을 넣지 않은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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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에 찬 얼굴,

검은 옷,

팔짱을 낀 자세,

어두운 계단 귀퉁이에 그런 남자가 서 있다.

배트맨이든 웨인이든

그 남자는 너무 멋있지만

배트맨의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야하는 남자 옆에는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남자가 그 운명을 내려놓고 오겠다고 해도 그 옆에는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레이첼이 죽어야 하는 건 좀 많이 너무하다.

 

 

 

새벽 5시반.

7시 기차를 타러 청량리역까지 가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배고픈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