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있어서 보통사람보다는 조금 느린 편이다.
사람들한테는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 그걸 알았다고 말하지만
그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고2가 막 되던 때였다.
고등학교는 선택의 순간부터 나에게 싫은 곳이었다.
고1은 어떻게 보냈는지...
선생님들께는 그저 우수한(? ^^) 학생으로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 내가 성적이 조금 좋았던 건
나에게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꿈을 접어야 하는 학교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싫었고,
친구가 없으니 놀거리가 없었고,
집에서 학교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 없었다.
학교-학원-집
반복되는 생활... 그저 책을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한학기 하고도, 절반의 학기가 더 지난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다른 학교 갔으면 저런 선생님 못 만났겠지.'
선생님의 어디가 좋았는지... 그런 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때 있었던 몇가지 사건의 조각들. - 어쩌면 추억이란 건 섬세함이 아니라 뭉퉁그려진 감정과 기억의 편린들이 만들어 내는 건가보다 -
겨울방학을 했고, 개학을 했고, 새로운 학년의 반을 배정 받고, 다시 봄방학을 했다.
이제 나의 선생님과 이별이다.
새로운 학년에 배정받은 친구들... 한 반이 네반으로 나뉘니 최소한 지금 친구 중 15명은 나와 다시 같은 반이 되지만, 친한 건 고사하고, 대화 몇 번 나눠 본 친구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 학년을 거의 외톨이다~ 싶게 지내다가
맘을 다잡게 해준 담임 선생님 덕분에 학교생활 좀 잘 해볼까... 하는데 학년이 바뀌게 된거다.
일주일 간의 봄방학도 어느새 끝이나고,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아이들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막막함을 갖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선지 생시에선지 내가 울고 있었다.
자다말고 엉엉우는 나때문에 놀라고 당황한 언니
- 왜 울어?
- 언니... 나 내일부터는 우리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 아니래. 엉엉 ㅠ.ㅠ
봄방학 하던날,
같이 인사하며 나눠먹으려고 사 온 커다란 뻥튀기를 교탁에 두고 혼자 드시며
"이거 내가 혼자 다 먹을 때까지 너희 집에 못 간다." 하실때, "좋아요~" 하구 대답하던 애들때문에 황당해 하시던 선생님.
그날 반 아이들 대부분이 헤어짐을 슬퍼하며 울때 머쓱해 하며 앉아 있던 나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밤에야 그날의 슬픔을 깨달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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