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스크랩] 한 세상이 지나갔네 1

약간의 거리 2005. 3. 18. 16:09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에 있어서 보통사람보다는 조금 느린 편이다.

사람들한테는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 그걸 알았다고 말하지만

그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고2가 막 되던 때였다.

 

고등학교는 선택의 순간부터 나에게 싫은 곳이었다.

고1은 어떻게 보냈는지...

선생님들께는 그저 우수한(? ^^) 학생으로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나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 내가 성적이 조금 좋았던 건

나에게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꿈을 접어야 하는 학교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싫었고,

친구가 없으니 놀거리가 없었고,

집에서 학교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 없었다.

 

학교-학원-집

 

반복되는 생활... 그저 책을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한학기 하고도, 절반의 학기가 더 지난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다른 학교 갔으면 저런 선생님 못 만났겠지.'

선생님의 어디가 좋았는지... 그런 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때 있었던 몇가지 사건의 조각들. - 어쩌면 추억이란 건 섬세함이 아니라 뭉퉁그려진 감정과 기억의 편린들이 만들어 내는 건가보다 -

 

겨울방학을 했고, 개학을 했고, 새로운 학년의 반을 배정 받고, 다시 봄방학을 했다.

이제 나의 선생님과 이별이다.

새로운 학년에 배정받은 친구들... 한 반이 네반으로 나뉘니 최소한 지금 친구 중 15명은 나와 다시 같은 반이 되지만, 친한 건 고사하고, 대화 몇 번 나눠 본 친구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 학년을 거의 외톨이다~ 싶게 지내다가

맘을 다잡게 해준 담임 선생님 덕분에 학교생활 좀 잘 해볼까... 하는데 학년이 바뀌게 된거다.

 

일주일 간의 봄방학도 어느새 끝이나고,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아이들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막막함을 갖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선지 생시에선지 내가 울고 있었다.

자다말고 엉엉우는 나때문에 놀라고 당황한 언니

 

- 왜 울어?

- 언니... 나 내일부터는 우리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 아니래. 엉엉 ㅠ.ㅠ

 

 

봄방학 하던날,

 

같이 인사하며 나눠먹으려고 사 온 커다란 뻥튀기를 교탁에 두고 혼자 드시며

"이거 내가 혼자 다 먹을 때까지 너희 집에 못 간다." 하실때, "좋아요~" 하구 대답하던 애들때문에 황당해 하시던 선생님.

그날 반 아이들 대부분이 헤어짐을 슬퍼하며 울때 머쓱해 하며 앉아 있던 나는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밤에야 그날의 슬픔을 깨달은 거였다.

 

출처 : ★ 우리모임 돌 ★
글쓴이 : 25층 영주 원글보기
메모 :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구야~ 아자! 아자!  (0) 2005.03.28
사랑에 대한 두번째 오해  (0) 2005.03.24
후회  (0) 2005.03.14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0) 2005.03.11
2005년 2월 16일 이후  (0) 200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