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체 시간.
무심히 고개를 돌리는데 전동휠체어를 탄 아저씨가 줄의 맨 끝에서 오고 있다.
휠체어에 눈이 멎는다.
다시 시선을 먼 곳으로 옮긴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만났을 때 비장애인인 내가 느끼는 기분은 늘 이렇다. 그냥 무심히 길가에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 시선이 옮겨지는 것임에도 단지 상대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는 나의 시선을 싫어할 거라고. 그래서 항상 서둘러 시선을 옮긴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데 자꾸만 그 아저씨의 전동휠체어 끝자락에 눈이 간다.
아빠는 그랬다.
깔끔한 성격 탓에 입성도 그랬지만 남에게 신세지는 걸 몹시 싫어했다.
아빠는 ‘멋’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깃털이 달린 중절모만 해도 그랬다.
휠체어를 탔지만 언제나 양복차림에 계절에 따라 중절모를 썼다.
중절모 파는 곳이 흔하지 않아서, 게다가 깃털이 달린 중절모를 구하기란 훨씬 더 힘들어서 한 번은 엄마랑 나랑 동대문 시장까지 나간 적도 있었다.
앗, 그러고 보니 아빠도 휠체어를 타고 동대문까지 나간 적도 있다.
아빠가 성당에 오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전동휠체어가 생긴 이후로 성당에 올 수 없었던 건 확실하다.
수동휠체어를 타던 시절에도 성당에 올라가려면 서넛의 장정이 휠체어를 들어주거나 누군가의 등에 아빠는 업히고 또 누군가는 휠체어를 들어서 옮겨줘야 했다. 아빠 성격을 아는 엄마가 남이 업는 걸 만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사람 맘은 그렇지 않으니까 어찌되었거나 신세지지 않고서는 가지 못하는 길.
그나마 전동휠체어가 생기고선 그게 들어 올리기엔 너무나 무거워서 늘 성당 마당만 한 바퀴씩 돌다가 돌아가곤 하셨던 거다.
성당을 처음 지을 때부터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싶어하셨던 마티아 신부님. 하지만 자금 사정상 공간만 비워두고 공사는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렇게 20년도 넘는 시간이 흘러서, 지금의 신부님이 오시고, 환자봉성체를 다녀가신 신부님께서는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시겠다고 하셨단다. 아빠도 이제 휠체어 타고 성당에 갈 수 있겠구나! 엄마는 퇴직금으로 받은 돈 중에서 적지 않은 돈을 아빠 이름으로 엘리베이터 공사헌금으로 내셨다. 당장이라도 시작될 줄 알았던 공사는 이런 저런 준비시간이 지나다 보니 신부님이 부임하시고도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저 아저씨는 그 엘리베이터가 있었기에 저렇게 무거운 전동휠체어를 타고서도 성당에 들어와서 혼자서 영성체를 모시고 있다. 영성체를 받아 모시는 아저씨의 뒷모습과 전동휠체어의 끝자락이 잔상으로 남아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아빠도 한 번쯤은 저렇게 휠체어를 타고 이곳에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없다.
파견성가를 부르는데도 자꾸만 꺼억꺼억 울음이 새어 나와서 서둘러 성당을 나왔다.
'┠anoth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멍이 있어서 대단해 (0) | 2021.01.22 |
---|---|
어린왕자도 나이가 든다. (0) | 2012.02.13 |
싫은 걸 어떡해 (0) | 2007.01.16 |
가족 (0) | 2007.01.01 |
오버랩 (0) | 2006.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