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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있어서 대단해

약간의 거리 2021. 1. 22. 15:43

욕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는 다양한 욕실용품들은 보관하고 있다.

타월, 샴푸, 비누, 칫솔, 치약 등등

그런데 이 장이 조명을 등지고 있고 욕실 문이 열리면 장을 막고 있다 보니

어디에서도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물건을 찾으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언젠가부터 장 위쪽으로 조명을 하다 더 달아야겠다고 이야기를 해 왔지만,

그 조명을 하다 설치하자고 사람을 부르기도 뭐 하고 그래서 불편한대로 살아왔다.

 

최근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붙여서 쓰는 조명이 있다길래 뭔가 하면서 찾아봤다.

크기며 밝기가 기록되어 있기는 한데,

그게 얼마큼 밝은 건지도 모르겠고, 장이 있다는 것만 알지,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도 몰라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중간 정도 크기의 조명을 구입했다.

마침 건전지도 함께 팔길래 그것도 함께 구매했다.

하도 여기저기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구경을 했더니, 내 기억엔 건전지가 4개 들어간다고 한 것 같은데

막상 받은 조명에서는 건전지 6개가 필요했다.

근데 건전지가 안 들어가는 거다.

- 이상하다, 6개라고 했는데 안 들어가.

 

혼자서 낑낑대는 나를 보며 동생이 이리 줘 보라고 했다.

그리고 아주 간단히 건전지를 장착해 줬다.

 

생각보다 불이 밝아서 맘에 들었다.

위치를 잡고 양면테이프를 붙여서 설치 완료.

와우~~ 아주 간단하고 좋았다.

그런데...

- 어?? 그런데 이제 건전지는 어떻게 바꿔? 이거 여기 붙여 버렸는데 건전지 끼우는 곳이 가려졌어.

- 언니, 그게 통째로 떨어져. 자석으로 붙는 거야.

-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거 양면 테이프으로 붙는 거야.

- ㅎㅎㅎㅎ 아, 이거 몰랐어? 여기 테잎 있는 부분이 자석이라서 이거 붙이고 전구는 떨어지는 거야?

- 우와~ 진짜? 넘 신기하다. 난 이제 전구 나가면 테이프 붙은 자리를 뗄 수도 없고 어쩌나 했는데...

- 우리 언니 진짜 대단해(리얼 칭찬).

- 뭐가 대단해. 완전 구멍이야. 너 없을 때 했으면 전구도 못 끼워서 사용도 못할 뻔했어.

- 모르면 안 하고 말 텐데, 일단 사 와서 다 시도해 보잖아. 그게 대단하지.

 

완벽해야만 대단한 건지 알았다. 그래서 언제나 완벽하려고 노력하느라 사는 게 힘들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구멍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래서 한때 구멍을 메꿔주는 멋진 남자를 만나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사실은 내가 구멍이 많은 사람이라서 구멍이 있어도 기죽지 않는 여주인공이 부러웠던 거고,

이렇게 구멍을 드러내고 나니, 드라마처럼 멋진 남자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아도,

주변에서 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칭찬해준다.

 

구멍이 있어서, 구멍이 있어도 대단해. 너는 그냥 너라서 대단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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