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거는 걸 싫어했던, 사실은 어려워 한 거였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전화를 걸면
- 통화 괜찮으세요?
하고 언제나 상대방의 사정을 물었다.
어느 날 어떤 분이 말씀하셨다.
- 넌 꼭 괜찮냐고 물어보더라. 괜찮으니까 말 해. 괜찮으니까 받은거야.
고마웠다. '아, 나 이 사람한테 전화할 때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구나.' 안심이 되었다.
삐삐는 일방적으로 자기가 할만한 하고 끊으면 되는 거고,
또 그걸 확인한다고 해서 바로 답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핸드폰은 달랐다.
어느날 누구에게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 미안, 내가 나중에 할께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는 않는 전화기를 들고서 나는 많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때부터 전화를 걸지 않게 됐다고 사람들한테 이야기했는데
사실이기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전화를 하면서 거절을 당하는 게 싫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전화가 생긴 건, 이웃들과 비교해서 한참 나중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내게 전화가 올 일은 없었고, 가끔 내가 집에 전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가끔의 사유는 '오늘 늦어요.' 하는 거였다.
그렇게 전화를 하면 번번히 나는 엄청 혼났다.
- 어린 게 어디서 전화로 니 맘대로 그런 걸 결정해서 통보해. 일단 집에 와서 허락 받고 가야지.
중학교 때였다. 바느질 숙제가 있었는데 그런 거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 나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하는 설명을 도통 알아듣지 못했고, 엄마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오시니 집에 가도 알려줄 사람이 없고, 마침 알려 준다는 친구가 있어서 하교 후에 바로 그 집에 가기로 했다. 집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정을 설명했는데 돌아 온 대답이 그랬다.
나는 숙제도 할 길이 막막하고, 집에 갔다가 친구 집에 다시 온다는 건 그때는 왜인지 모르지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지만 아빠는 저렇게 화가나서 막 소리를 지르니 겁도 나고, 결국 울고 싶은 맘을 붙들고 겁에 질려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다시 또 같은 내용으로 엄청 야단을 들었다. 그리고 실과 점수는 뭐 늘 나빴다.
아무튼 나중에 나중에 스무살이 넘어서 약간의 배포가 생겼을 때에는 늦어도 절대 집에 전화 연락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혼날 거니까 집에 갔을 때 한 번만 혼나자가, 전략이라고 했는데 더 후에는 여행같은 걸 갔을 때에도 몇날이고 집에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괜찮다'고 너의 전화를 받는 것 자체가 내가 너에게 YES! 라고 말해 준 거라고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잘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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