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에 내가 했던 일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일은
이러저러한 사정 상 한달에 일주일은 점심을 먹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 업무 분장이 새롭게 되면서 이제 그 일은 하지 않게 되었는데
대신에 한달이 2주간은 야근을 해야 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정시 퇴근이 삶의 중요한 모토라고 주장하면서 살아온 나에겐 엄청난 타격을 주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는 그 일이 내게 올 거라고 예상했었고,
그 일로 만나는 청소년들을 내가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그닥 나쁜 느낌은 없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특히나 갑작스럽게 생기는 번개 모임 같은 것은 번번히 거절해야 할 수 있다니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속상하다.
그래서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모임에 갔을 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이 모임의 특징은 언제나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언젠가 모임의 멤버가 아닌 한 사람이 동석을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 저기요... 근데 여기서는 누가 듣나요?
하고 물었었다. 모두 빵! 터져서 엄청 웃었다. 그러나보니 엄청 시끄럽다. 너무 시끄러워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다. 만나면 어찌나 서로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서로 이야기 하기에 정신이 없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나는 나의 처한 상황을 너무나 이야기하고 싶어서
-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라고 까지 외치면서 이야기를 했다.
- 나 말야, 이제 한 달에 2주는 무조건 야근해야 해(시무룩).
내가 기대했던 반응은 당연히 사람들이 나를 안타까워하며 번번히 개인적인 희생이 많이 필요한 업무를 부여하는 회사를 욕하거나 뭐 그런 거였다. 그런데 이 사람들,
- 그래? 그럼 안 하는 주에 만나면 돼지.
라고 거의 동시에 이야기하는 거였다.
'뭐지? 근데 왜 나 기분이 이렇게 상쾌하지?'
그렇다, 그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완전 달랐는데 나는 기분이 엄청 좋았고, 그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나의 상황이 우리가 만나는데 장애가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였고, 그럼에도 이 사람들이 당연히 나와 함께 만나려고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거였던 거다.
그런데 진짜 마음하고는 완전 무관한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내 마음 속의 바람에 대해 답을 주는 사람들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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