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조금씩 철이 들어 가는 나

약간의 거리 2001. 11. 5. 18:35

이제 조금씩 철이들어 간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뉘지 않듯이
좋은 것과 싫은 것으로 양분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아 가면서 말이죠.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보다 더좋아하는 음식이 생기면 철이드는 거라는 어떤 사람의 말.
그때는 철이 들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장면이 너무 좋아서 "나는 절대 철같이 무거운 건 들지 않을 거야." 라고...
정말 철없는 대답을 했었죠.

스물다섯이 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국민학교 때 성적표에 제 성격이 왜 '내성적'이라고 적혀 있는지,
처음보는 사람이 저에게 왜 말 시키기 어려워 하는지,
주변의 누군가가 가끔씩 왜 말투를 바꾸라고 이야기 하는지,

내가 그렇게 고집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오히려 성격같은 거 절대 바꾸고 싶지 않아졌죠. 괜한 고집이래요. 오기 같은 거.
지금도 뭐... 그래서였다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바꾸고 싶다, 바꾸고 싶지 않다...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뀌더군요.

흑과 백의 논리를 참 싫어했죠.
세상일이 그렇게 나뉘는게 아니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그러면서 우리사회의 이러저러한 분위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성토같은걸 하기도 했는데...
남의 눈의 티끌, 내눈의 대들보! 라고 했던가요?

나야 말로 주변 사람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렇게 양분하고 있었지 뭐에요.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겠죠. 이게 서로 맞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후자가 되는 거에요.
날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 그 사람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이제서야,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야,
나의 말도 안되는 양분법 논리를 깨닫고 있습니다.
세상에 좋아한다는 느낌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좋아하지만 적정한 거리가 필요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좋아하지만 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싫어하지만 웃으며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세상이 나에게 너무나 힘들었던 건
이런 작은 차이들을 모두 뭉뚱그려 버리려고 했던 나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는 걸
이제서야 겨우 깨닫네요.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지금 깨달아 가는 걸 사는 것에 연결시키려면 또 얼만큼의 맘고생을 지나야 하는 걸까?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개속을 걷다  (0) 2001.11.23
미국의 거만함이 눈꼴시리죠.  (0) 2001.11.13
사는게 재밌어요?  (0) 2001.11.04
드디어 시월의 마지막 날이 왔군요^^  (0) 2001.10.31
탈레반군이 대반격을?!  (0) 200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