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노력은 머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거야

약간의 거리 2006. 8. 9. 17:51

9년을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드랬다.

- 왜 헤어졌어?

 

정말 많이 듣고, 또 들었던, 헤어진 지 2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씩 듣는 질문

 

- 헤어질 때가 돼서.

 

대답은 늘 같다.

 

- 헤어질 때가 돼서.

 

그랬다. 그날 여느때와 똑같이 전화를 하고, 약속을 하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데..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오늘 헤어져야 겠구나!'

 

- 그만 만나.

 

하고 말했다.

 

 

지난 9년 동안 정말 많이도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영원히 못 만날 것처럼 엉엉 울었던 적도 많았고, 두서너달 아예 연락을 끊었던 적도 있었고, 일방이 연락을 두절한 적도 있었다.

어느 한 순간엔 열열히 사랑했고,

어느 한 순간엔 지리멸렬하게 지겨웠고,

어느 한 순간엔 불안하고 힘들었고,

어느 한 순간엔 무관심 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순간이 좋았다.

나랑 너무나 맞지 않는 그의 성격이 짜증스러웠지만 좋았고,

헤어지는 길,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영원히 마지막 모습이라 생각되는 불안한 순간에도 좋았으며,

군대에서 근무 중이라서 새벽 서너시에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단잠이 깨는 것도 좋았고

면접보고 나와서 대답을 잘 못했다며 징징거리는 어리광이 하나도 의젓하지 않았지만 좋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유행가는 정말 맞는 말이다.

 

사랑하고 좋아하고 지루하고 힘들고 아프고 무관심하고 짜증나고 불편하고 기다려야하고...

 

단지 말로만 추스리려해도

Good 인 것은 고작 2개에 불과하고

Bad 인 것은 저렇게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짜증나는 순간도, 아픈 순간도, 불안한 순간도, ...

그런 모든 순간, 순간들이 두근거림으로 녹아내리기 때문에 사랑일 것이다. 그것이 그저 고통스럽게 다가온다면.. 그때 사람들은 그 사랑을 돌이킬 수 있을까?

고통스러운 순간이 폭풍처럼 몰아칠 때 잠시 몸을 낮추고 바닥에 엎으려 있으면, 그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사랑이 햇살처럼 비춰올까?

 

 

모든 것은 바닥을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닥까지 내려가야 다시 딛고 올라올 땅이 있는 법이니까.

슬플 땐 그 슬픔이 바닥을 칠때까지 슬퍼하기 위해 오히려 슬픈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나만의 세계에 나를 가둬둔다.

아플 땐 2,3일 앓아누워 혈색이 파리해질 때까지 아프기를 원한다.

사랑을 잃지 않고 싶을 땐 그 사랑이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비겁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랑은 아프거나 슬픈 것처럼 혼자서 바닥을 칠 수가 없다. 상대가 내게 잔인해주지 않으면 그 사랑은 결코 끝을 낼 수 없는 것이다.

 

후회한다.

그날 "그만 만나" 라고 말한 것을.

그것을 말하기 전에도 그러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말하는 순간에도 알았고,

그것을 말한 날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알았다.

죽을 때까지 그 말을 내 뱉은 것을 후회할 것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매 순간 바닥을 칠 때까지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해 왔으면서

사랑 앞에서 바닥을 칠 때까지 가보지 않은 나를 후회한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만 만나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세상 끝날에 우리 두 사람이 한 자리에 있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이별이라면 나는 이별의 말을 듣기 보다는 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더 잔인해야 한다면 내가 그 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다.

 

나는 후회한다.

바닥을 칠 때까지 가 보지 않은 것을.

서로가 바닥을 칠 때까지는 서로에게 책임을 다 했어야 하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어떤 일에나

힘들고 아프고 견디기 힘든 순간이 있다.

나 때문에 힘들고, 상대 때문에 숨이 막히고, '우리'라는 단어가 삶을 버겁게 할 때가 있다.

나 때문에 당신이 힘들고, 당신이 아픈 걸 볼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나 때문에 당신이 어떻다는 죄책감을 갖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약간씩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냉정해 보면

그 가장 밑바닥에는 나를 위한 이기심이 깔려 있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이기심,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 듣고 싶지 않은 이기심.

 

바닥을 칠 때까지 노력해 보면 좋겠다.

만약 바닥을 칠 때까지 버틸 용기가 없다면, 바닥을 치나 안치나 뻔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그때는 "나쁜 사람이 되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수 없다거나... 하는 생각이나 말들

사실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을지 생각해 보자.

 

어차피 돌이킬 수 없다면,

바닥을 칠 때까지 내려갈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이 아주 아주 나쁜 사람이면 좋겠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당연히 당신을 향해 "진짜 나쁜 놈이잖아!" 라고 욕해도 조금도 미안하지 않을 만큼.

 

그건

바닥을 칠 때까지 노력하지 않은 당신이

당신의 사랑에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당신이

응당 받아야 하는 댓가일 테이까.

삶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사랑엔들 공짜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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