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벚꽃동산

약간의 거리 2004. 4. 2. 11:48
 

극장안에 들어섰을 때는 바닥에 하얀 꽃잎이 뿌려져 있었다.

 

벚꽃동산, 티켓

 

백과사전에서 실려 있을 만큼 커다란 벚꽃동산을 소유한 러시아의 부자.

하지만 이제 남은 재산은 벚꽃동산과 저택뿐.

저택을 관리하는 하인들에게 먹일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하고, 빚에 몰려 결국엔 그 벚꽃동산마저 경매에 넘어갈 지경이지만

아직 그 저택의 부인은 소녀같은 마음과 불쌍한 사람에게 성큼 금화를 건네주는 여유가 있다.

좋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야말로 현실감이 없다는 거다.


 

벚꽃동산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저택의 부인처럼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어쩌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앞두고 신구세력이 교체되는 시기.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연극의 주인공들일런지도 모르겠다.


 

귀족흉내내기를 좋아하는 하녀.

주인을 따라 다녀온 프랑스의 향수에 빠져 신분을 망각한 남자 하인.

노동만이 살길이라고 부르짖지만 정작 자신은 이렇다 할 수고 없이 떠돌고 있는 만년대학생.

한 시도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지만 정작 빚에 쫓기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할 만한 일은 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잔소리만 늘어놓는 딸.

“내가 머물 곳은? 나는 누구지?”라며 대답 없는 메아리 같은 소리를 외칠 뿐인 마술사 처녀.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게 과거의 이야기를 하루 종일 혼자서 중얼거리는 늙은 하인.

농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신의 부모는 함부로 발조차 들여 놓을 수 없었던 주인집의 대토지를 사들인... 그리고 그 동산의 벚꽃나무들을 베어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그 세상과 마주서지 못하는 로빠힌.


그들은 나름대로의 향수와 미련과 추억들을 간직한 채

불안함과 두려움, 혹은 희망을 가지고 벚꽃 동산을 떠나 새로운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그들에게 벚꽃동산은 안식처였고, 굴레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들에게 벚꽃동산은 그리움이 되었다.


벚꽃동산 , 포스터

 

 

봄비가 처연하게 내리던 날...

기대했던 진짜 벚꽃은 볼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접한 공연장의 공기 때문인가?

4월이 참 예쁘게 시작된 느낌이다.

 

포스터를 좀더 꼼꼼히 들여다 봤으면

공연이벤트 식사가능....

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을 텐데...

그러면 빗속을 헤매며 끼니를 해결하려는 고생을 덜 수 있었을 것을...

 

벚꽃동산, 끝부분

공연의 끝부분을 누군가 찍어 왔네요. 이럼 안되는데.... 덕분에 난 잘 쓰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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