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왕의 남자

약간의 거리 2006. 1. 10. 14:21

- 장생의 마음 -

 

"나 여기 있어. 너 거기 있지?"

"......"

 

답이 없는 겁니다.

 

"나 여기 있어. 너 거기 있지?" 하면, 언제나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했었는데 말입니다.

 

눈이 멀어서 어느 잡놈이 그놈 맘 훔쳐가는 걸 보지 못했죠.

아니, 눈을 버젓이 뜨고도 그걸 보지 못했으니 차라리 눈이 먼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눈이 멀고나니 외려 마음이 보입니다.

 

네가 거기 있었기에 내가 여기에 있었던 거죠.

 

 

어느날 모든 것을 다 가진 놈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놈... 마음이 비어 있었죠.

세상 사람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는 그 놈을 웃길 수 있는 게 광대라니... 우스워보였죠.

그런데 그 잡놈이 그 놈의 맘을 뺏어갈 줄은 몰랐죠.

여느때와 같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그렇듯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이번에는 두들겨 맞아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저 등대고 돌아누워버렸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보지 못했겠죠.

마음이 가고 있는 걸.

 

 

 

 

 

이제 다시는..

결코..

등을 보이지 않을 거에요.

 

 

 

 

- 공길의 마음 -

 

"놀자."

그에게서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어요.

 

"놀자."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게 그림자극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죠.

어미를 그리워하는 아들을 아비는 꾸짖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한마디로 누구든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사실은 여전히 어미가 그리운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돌아누운 그의 등이 산 같습니다.

그가 저렇게 화가 나 있는 건,

사내로 태어난 내가 이쁘장한 외모 때문에 이리 살아야 하는게 속상해서 일까요?

 

 

그의 마음을 알 길이 없으니

나 또한 그저...

돌아 누울 수 밖에요...

 

 

 

 

 

- 연산의 마음 -

 

이것은 그저 광대들의 놀이판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참 자유롭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천민일진데, 실은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삶은

지금 저들이 놀고 있는 외줄타기와 같습니다. 땅도 하늘도 아닌 허공에 떠 있는 외줄.

 

내가 웃을 수 있는 건 저들이 광대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광대들의 광대놀음일 뿐이기 때문이죠.

지금 저 마당의 왕은 사실은 광대일 뿐이니까요.

 

지금 내가 웃진 않는 건, 저것이 단순한 광대 놀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광대의 놀이판이란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그저" 꾸며낸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웃지 못하는 저 자. 그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내가 웃을 때, 저것은 놀이에 불과하지만

내가 웃지 않을 때, 저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모든 권력과 힘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그리고 바로  지금 ...

저 광대...

붉은 피가 흐릅니다.

 

나는 오래 전의 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삶은

땅도 하늘도 아닌 그 중간의 어느 만큼에 걸려있는 외줄을 타는 것과 같습니다.

언젠가 떨어져야 한다면,

한번쯤은 그저 창공을 향해 힘있게 뛰어 올라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저 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