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문닫지 마세요.

약간의 거리 2004. 3. 25. 15:22

문

어제는 퇴근이 좀 늦었다.

집에 갔더니 형부가 먼저 와 계신다.

거실에서 저녁을 드시는데...

옷을 갈아 입을 수가 없어서 그냥 앉아 있었다.

불편하다.

언니와 형부가 돌아간 뒤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을까?

 

 

우리집은 딸만 넷이다.

아빠가 계시지만 몸이 불편하셔서 방안에만 계시기 때문에

안방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집은 여자들만의 세상이다.

때문에 옷차림과 화장실 사용에 대해서는 정말로 자유로왔다.

 

우리집에는 닫힌 문이 없다.

딱 하나 현관문만 닫는다. 아니 잠군다.

(현관문을 잠구는 건 혹시.... 하는 사태를 대비하여~ 우리집은 나가 싸울 힘쎈 사람이 없으니까^^)

안방은 아빠가 부르는 소리가 잘 들려야 하니까 열어두는 거고,

다른 방이나 심지어 화장실까지 문을 닫는 법이 없다.

오로지 목욕을 할때만 난방을 위해서 화장실 문을 닫는다.

 

 

이런 평화(?)는 언니가 결혼을 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해도 방문을 꼭 닫아야 하고,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항상 문을 닫아야 하고,

물론 가끔 명절 같은 때에 친척들이 오면 그런 불편이 있기는 했지만

이게 상시상황이 된건 언니가 결혼한 다음부터다.

처음에 옷을 잘 챙겨입고 조심하던 엄마는 한 3,4년 지나니까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처제의 입장인 나야 그럴 수가 없으니

 

위아래층에 사는 언니가 우리집을 제집처럼 여기며 사는 요즘은 밤늦은 시간까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평소엔 나의 귀가가 더 빠르니 옷갈아 입는 것에 대한 불편은 못 느꼈었는데....

 

 

방문을 닫고 갈아 입으면 되는데... 그게 왜 어려웠을까?

 

방문을 닫는 걸 나는 잘 못하겠다.

그건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방문을 닫는 건, 남아있는 가족들과 나 사이의 단절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지 모르는데

나는 그런 느낌이 든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차단시키는 듯한...

 

옷 갈아입는 짧은 시간,

어쩌면 채 5분도 되지 않는 시간일텐데.

그 시간조차 다른 사람과 단절되는게 싫을 만큼 나는 허기를 느끼는 걸까?

 

문을 열고 사는 우리집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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