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는 이제 4살 된 사촌동생이 있다.
마흔 넘은 나이에 장가간 삼촌이 입양한 동생이다.
우리 가족 모두는 그 아이를 마치 제각각의 자식처럼 키운다.
삼촌이나 숙모나.. 두 사람 모두 사근사근한 성격이 아니라 아이를 험악하게 다루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은 모두 그 아이에게 철저한 사랑만을 준다.
내가 아기에게 접근한 방법은 놀이를 통해서다.
아기들은 한달에 한번 얼굴을 보면 잊기 마련이어서
첨엔 아기들이 좋아한다는 있다없다 놀이를 해 주었다 -재민이의 육아일기는 그런 면에서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아기는 여느 사람들처럼 내 얼굴을 잊었지만 그 놀이만은 기억을 해서
놀이를 해 주면 금방 나를 따랐다.
그리고 아기가 말을 하지 못할 때부터 놀이와 더불어 내가 시킨 교육은
나를 가리킬 때 꼭 "이쁜 언니"라고 하는 거였다.
- 아기 왔네. 나야 이쁜 언니~~ / 이쁜언니 보고 싶었지? / 이쁜 언니야.. 안녕!
이런식으로 말이다.
이 교육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아이는 이쁜언니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를 가리켰고,
어느 날엔가 버스에 타고 있던 나를 엄마등에 엎혀 걸어가면서 보고는
엄마한테
- 이쁜 언니야~ 이쁜 언니...
했단다.
정말 흐뭇했다.
그런데 얼마 전
주일에 집에 놀러온 아이가 나를 보며 "이쁜 언니, 이쁜 언니" 하고 부르는데 그게 영~ 어색했다.
정말 이뻐서 "이쁜~" 이 아니라, "이쁜" 이라는 단어가 내 이름, 그러니까 고유명사 처럼 들렸던 것이다.
-이쁜 언니 일루 와봐
-이쁜 언니, 나 컴할래
-이쁜 언니, 무슨 노래 듣고 싶어?
난 조금씩 씁쓸해졌다.
다시 얼마 후, 친척 결혼식엘 가게 됐다.
아이는 결혼식장에 장식된 꽃을 예쁘다면서 너무 좋아했다.
나와 아이의 친밀감을 질투한 또 다른 사촌 동생이 아이한테 물었다.
-☆아, 꽃이 이뻐, ☆가 이뻐?
-꽃
다시 물었다.
-그럼 꽃이 이뻐, 이쁜 언니가 이뻐?
-언니
그런데 이 대답이 날 너무 슬프게 했다.
-이쁜이 어딨어?
하고 물으면 꼭 자신을 가리키고,
-이쁜 언니는?
하고 물으면 꼭 나를 가리키던 녀석이었다.
행여 '못난이'라고 불렀다간 그날은 작별인사조차 해주지 않는....
그런데 그런 이쁜이 자신보다도 꽃이 이쁘다고 말해 놓고는
꽃보다는 내가 이쁘다고 하다니....
아이는 혹시 그 질문에 날 선택하지 않으면 내가 삐칠까 두려워 했던 건 아닐까?
질문을 던진 동생은 음흉한 웃음을 띄우며,
-역시 세뇌 교육은 좋지 않아. 내가 이쁘다는 뜻에 대해서 다시 교육 시켜야 겠어.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지난 4년여의 교육이 무참해 지는 순간.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으리~
내 동생이 아기를 낳으면 그때는 이번 일을 거울 삼아 좀더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짜서 교육시키리라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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