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내 방 어딘가에 새가 살고 있다.

약간의 거리 2003. 10. 9. 10:22


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

비둘기.

아마도 내가 비둘기를 싫어하게 된 건 나보다 세살 아래의 동생이 초등학교 시절 - 아마도 나는 중학생이 되었을 때인 것 같다 -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도중 정신없이 쌀을 먹고 있는 한 무리의 비둘기 때문에 한참을 길에서 울고 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부터 일 거다.


몸 안에서 저절로 꾸룩꾸룩 소리가 나올 만큼 먹어대고,
뒤룩뒤룩 살이 쪄서 멀리 날지도 못하고,
옆으로 살짝 지날라치면 갑작스레 푸닥거려서 놀라게 하고,
어쩌다 높이라도 나는 녀석이 있을라치면 하늘에서 민망한 것을 무차별 떨어뜨리고,

정말이지 뭐 하나 이쁜 구석이 없는......


그 비둘기를 ‘새’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비웃었다.

공원에서 -분명 또 정신없이 뭔가를 먹고 있었을 거다- 고양이의 공격을 받는 ‘새’를 구하려다가 손등에 상처가 난 그 사람을 나는 참 오랫동안,
아니 지금도 가끔 함께 거리를 걷다 비둘기를 발견하면 그때를 떠올리며 맘껏 놀려준다.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새 소리가 들린다.

씩씩한 참새 소리 같기도 하고,
병아리보다는 큰, 그렇지만 아직 닭이 되지 않은 또 하나의 날지 못하는 새의 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장난감 강아지의 앙앙 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천장에 새가 사나?
아니면 스크린 설치해 놓은 구멍으로 들어왔나?

새 소리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새 소리를 찾아 나선다.

하하
그런데 그 소리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거였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지만 비둘기 울음소리였다.
창틀에 자꾸만 깃털을 떨어뜨려서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비둘기.

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울음소리 때문에 비둘기를 조금은 덜 미워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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