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피해자에게 먼저 공감해야

약간의 거리 2021. 2. 22. 12:37

학폭 피해자들의 폭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에는 언론에 보도가 안 된 채 그냥 조용히 묻혀 버려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유명인이 되고, 학폭 가해 사실이 폭로되고, 그 유명인의 삶은 한 순간 무너져버리고.

그러면서 어렸을 때 한 번의 실수로 왜 그 사람의 삶 전체가 무너져야 하나, 하는 소리들도 들려온다.

 

나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게 생각한 어떤 유명한 사람의 학교 시절 폭력 가해 행동에 대한 피해자의 폭로가 들려올 때, 첫 번째 마음은 '설마? 진실이 아니겠지.'이다. 그런 마음이 어느 정도는 계속 있다. 그런데 욱해서 한 번 누군가를 때린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정성 들여 그걸 폭로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쪽의 마음이 훨씬 크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괴롭히기 위해서 거짓, 혹은 과장해서 폭로하는 사람. 그건 밝혀내면 된다.

 

사람은 변한다고 성장하면서 달라졌을 거라고 어렸을 때 잘못으로 평생을 발목잡히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시는 분의 이야기에 100% 반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정말 안 변한다. 그래서 기질이네, 성격이네, 하는 논쟁들이 끊이없이 있지 않나. 정말 천재지변과 같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거나, 개과천선할 만한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진짜 안 변한다.

어렸을 때 잘 못에 발목 잡히는 건 안 된다. 그 사람이 그 잘못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렀다면 말이다.

 

폭력의 피해자들은, 더구나 그것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뤄진 피해라면, 도움을 청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면 더더욱이나 죄책감과 수치심, 억울함, 좌절 등 많은 불행한 감정들에 휩싸여 살아가게 된다. 그걸 극복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런 사람이 다시 가해자와 화면으로 마주하면서 느낄 고통을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사람의 삶은 이미 오래전에, 그 사람이 풋풋하게 아름다워야 할 십 대 시절이 망가졌다. 그런데 지금, 겨우 겨우 용기를 내어서 자기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아 가해자가 평생 일궈온 삶을 망가뜨리는 거라고 누가 비난할 수 있나? 그 사람은 정말 힘들게 용기를 끌어 모아서 그저 자신의 억울함을 말했을 뿐이다. 그 사람이 겪은 사실을 털어 놓은 것이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사과를, 진정어린 사과를 바란 것 뿐이다.

 

지난 과거에, 어린 시절에 폭력 한 번 했다고 그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고? 그 아이의 부모가, 선생님이, 주변의 다른 누군가가 이미 그 아이의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보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아이가 진정어린 반성과 사과할 기회를 빼앗았을지 모른다.

이제 세상의 불특정 다수가 다시 그 사람의 부당행위를 보호해 줄 보호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리고 더욱이나 자기의 잘못에 대한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가해자를 피해자도 아닌 우리가 맘대로 용서할 자격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게 "괜찮아? 그 동안 혼자서 말도 못 하고 그걸 맘에 품고 어떻게 살아왔어? 정말 힘들었지?"가 아닐까?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though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아픈 이야기  (0) 2021.02.25
엄마의 졸업식  (0) 2021.02.23
다른 삶 꿈꾸기  (0) 2021.02.17
설 명절에 한 일  (0) 2021.02.15
유연성과 거짓말  (0) 2021.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