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리고 누군가의 위로는 받는 것도 어렵다.
내가 받았던 최고의 위로는 30개월 무렵이었던 조카가 방에 혼자 있는 내게 기어 와서는
내 어깨에 살짝 기대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내 어깨에 자기 머리를 기대었을 뿐 나와는 무관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그 녀석의 체온이 전해지는 순간이 정말 따뜻했고
'이 아이는 내 마음을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 지금 나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의 체온을 나눠준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분기마다 진행되는 대표와의 면담 날이었다.
굉장히 형식적이고, '굳이 왜 하나' 싶은 면담을 대표는 빼먹지 않고 진행했다.
"요새 어때?"라는 상투적인 질문으로 면담은 시작됐다.
나는 안정되고 편안하다고 대답했다.
뭐가 그러냐고 대표가 다시 물었다.
"일단 직원들이 들어온 지 6개월이 지나니 모두 각자의 업무를 잘 수행하고, 또 의사소통도 잘되다 보니
회사를 다닌 모든 기간 중에 가장 안정되었고, 좋습니다."
"그래. 작년에는 계속 그만두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팀장을 비롯해서 팀원들이 모두 그만두고 팀에 저 혼자였잖아요.
업무적인 부담부터 스트레스가 너무 컸어요."
"그런데 그때 왜 그만두지 않았지?"
"글쎄요...... 아마도 책임감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일을 해야 하고,
저는 맡은 것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래? 그렇다면 자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그만두고 싶었지만 일을 마무리하고 조직은 안정시켜야 해서 계속 다녔다는 건데,
그럼 조직이 안정된 지금은 왜 그만두지 않나?"
토사구팽.
그러니까 나는 지금 비공식 해고 통지를 받은 셈이다.
그 후에 대표는
너의 경력을 생각할 때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충고다,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어쨌거나 포인트는
'나는 지금 자네가 회사를 그만뒀으면 좋겠는데'였다.
어쩐지 최근에 유난히 나를 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고
어제만 해도 외부 기관이랑 하는 회의 시작 30분 전에
갑자기 회의에 들어올 필요 없다는 통보를 해 왔었다.
너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의 뇌는 일순 '정지' 됐다.
어떤 느낌도
어떤 생각도
표정조차 사라졌다.
하루가 지났고,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이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신이 생겼다.
일단 가장 가까운 해결중심 대화를 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했다.
"뭐래? 진짜 사람이 별로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막장이었어?
정신 똑바로 차려. 너는 갚아야 할 대출금이 있어. 그만 둘 생각은 하지도 마.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적시해야 돼."
다시 하루가 지났고,
역시나 현실적이지만 남의 일에 깊게 개입하지 않는 동료와 이야기를 했다.
"제정신인 거예요? 이거 완전 민원감이야. 민원실에 글 써요.
지금 정직원 한 명 나가면 임시직 자리밖에 안주는 상황인데 겨우 회사 안정됐는데 어이가 없네.
잘 생각해요. 그 사람은 선출직이야. 임기가 6개월밖에 안 남았어. 누가 먼저 나갈지는 모를 일이야."
"설마요. 그런 뜻은 아닐 거야. 그냥 뭐가 달라진 건지 물어본 거 아닐까.
나한테도 뭐라고 했거든."
"그건 선생님을 견제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따르니까 싫은 거지.
그만큼 선생님의 파워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한 거죠."
회사 밖의 어떤 사람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서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내가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미안해요. 아직 정리가 안돼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끊을게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정리가 되면 이야기해 줘요."
사람마다 위로의 방법이 다르다.
그리고 1일 차, 2일 차, 3일 차에
내 귀에 들려오는 위로의 말도 다르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만큼 전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들을 수 없는 상태일 때는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가 있을까.
.........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루, 이틀...
낮과 밤이 지나가고 잠을 자면서
나는 몹시 자존심이 상했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비칠까를 염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위로를 들으면서
그들이 각자의 방법대로 해 준 위로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서
나는 내 수치감을 마주 볼 수 있게 됐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너 정말 창피했구나. 그런데 그건 네가 잘 못 해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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