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신부님의 발령 소식은 오랫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다.
오실 때부터 떠날 줄을 알고 만나는 만남이 뭐 그렇게 질척거릴 일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는 이런 감정 자체가 낯설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주임 신부님은 가시는 날을 잘 알고 있어서 벌써 몇 달 전부터 나름의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두 분과의 헤어짐은 내 30년 넘은 신앙생활 동안 무수히도 반복되었던 헤어짐과는 달랐던 것이다 -신부님들은 1년, 2년, 혹은 4,5년에 한 번씩 발령이 나서 다른 곳으로 가신다- 나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름대로 헤어짐의 단계를 밟아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뜻이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나 혼자서 '신부님 가시기 전까지 무엇을 몇 번 해야지!' 이런 계획을 세워 놓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가끔씩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보좌신부님을 놀리듯이 물어봐 주곤 했다. 보좌신부님은 6개월 후에 갈 사람이니까.
그런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떠난다고 했다. 떠나는 날을 겨우 12일 남겨두고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렇게 몇 날을 보내다가 마음 둘 곳을 찾아 일하는 곳에서 가까운 성당을 찾아갔다.
점심시간. 가끔은 그 성당의 신자 몇이 있었고, 가끔은 아무도 없는 그 성당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고, 이유를 모른 채 울기도 했다.
이별의 날이 왔고, 두 분의 신부님이 모두 떠났지만 나는 점심시간이면 성당에 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하고 보름이 지나고 나니 이제 남의 성당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혹시 그 성당의 누군가가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면 어쩔까 싶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실 나부터도 성당에 누가 드나들던 관심이 없다- 이제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모임이 있는지 살펴보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면서 내가 평생을 다녀온 성당이 오히려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근이라는 명목 하에 평일 미사를 가지 않은지도 오래되었구나, 하며 낯선 성당이 익숙해지는 무렵에서는 우리 성당 저녁 미사를 갔다.
해설자는 미사전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읽고 있다.
나는 제대 위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제대를, 독서대를 바라본다.
낯설지 않다.
익숙하다.
따뜻한 느낌이기도 하다.
울컥하는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사제가 입당을 한다.
다시 낯설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입을 열면 겨우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진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낯설어졌다고 생각했던 곳이 여전히 익숙해서 인지,
익숙한 곳에서 발견한 낯섦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별은 시작이나 끝과 같은 어느 지점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어딘가로는 흐르는 것이 었다. 그 슬러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슬픔은
이별이라는 시간이 나를 지나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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