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응
-오랜만이에요
-응
-여보세요?
-응
-그게 뭐에요?
-왜?
-누나. 응. 오랜만이에요.응... 그게 다에요?
-그럼 뭐라고 해? 잘 지냈어? ㅎㅎ
뭐 이런 항의는 늘상 있는 일이다.
-여보세요
-왜?
-내가 왜라고 좀 하지 말랬지?
라거나...
문자메시지에 답이 너무 짧다거나, 혹은 아예 답을 하지 않는다거나.
대부분의 경우, '날더러 어쩌란 말인지!' 하지만 가끔씩은 나도 노력이라는 걸 해 볼때가 있다.
하지만 길고 길게 문자의 답을 쓰는 건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고, 그렇게 답을 하다보면 그 주고 받음을 대체 어느쯤에 끝내야 하는 건지 너무나 고민스럽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에서 "누나?" 하고 부르는데 "응. 나야" 뭐 이런 식으로 같은 답을 두번씩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물론 조금이라도 길게 답하려고 하는 나의 노력은
다이어트를 위해 소식을 하겠다거나, 운동을 하겠다거나, 하는 다짐처럼 아주 짧은 시간이 끝이 나고 만다.
사실 이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내가 글을 쓸 때다.
언제나 나의 글은 너무나 짧다. (요즘은 정말 많이 길어졌다, 분석의 효과가 없진 않나보다^^) 언젠가는 어떤 이의 자서전 과제를 대필해 준 적이 있었는데.. 나는 며칠동안이나 그 사람을 인터뷰해 놓고는 고작 5페이지짜리 자서전을 써 주었다. 글자크기를 조정한다거나 줄간격을 넓힌다거나 해서 그 사람이 페이지를 늘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는 그 이상 분량을 늘릴 수가 없었다. 정말 그의 스물다섯해 일대기를 썼는대도 말이다. 뭐 다행이 학점이 나쁘지 않았다고 하니 안도했다.
그래서 어느날엔가 나는 다른 사람의 책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몇백페이지 짜리 책을 쓰는 걸까?
<향수>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향을 가지고 써내려간 그 책은 웬만한 책의 두배 가까운 두께를 가지고 있는데 어떤 한 가지 향을 설명하는데 서너페이지가 훌쩍 넘어갈 때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그렇게 무수히 많은 표현으로 다시, 또 다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아, 이래서 이렇게 길게 쓸 수 있는 거구나!', '와, 어떻게 이런 묘사가 가능할까?',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하며 감탄을 했는데... 결국 나는 얼마가지 못해서 같은 이야기가 표현만 바뀌어 반복되는 페이지들은 건너뛰어서야 그 책의 마지막과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 글이 길어지려면 지루하지 않은, 다양한 수식어와 표현들로 같은 것을 반복해서 그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의 지론은 같은 걸 왜 반복하느냐! 인데 말이지.
그건 글쓰기에서 뿐만아니라 일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그렇다.
같은 말 두번 물어보는 사람 싫고,
같은 말 두번 하는 하는 사람도 싫고,
아무리 아름다운 표현을 쓴다해도 같은 글 반복해서 쓰면 지루한 걸!
그런데,
아이와 대화를 할 때에는 아이가 한 말을 반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동생이 무슨 책에선가 읽고 와서는 이야기해 줬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걸 읽지도 배우지도 않았는데 우리 조카랑 말할 때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다는 거다. 어제만해도 그렇다.
-이모야, 내가 케로로 파이터를 했어
-어~ 우리 승호 오늘 케로로 파이터 했어?
-응 그랬는데 내가 두번이나 스파이크했어.
-와~ 우리 승호 어제는 한번도 못했는데 오늘은 두번이나 스파이크를 했어? 대단하다!
언젠가 우리 교수님 중 한 분이 내가 조카랑 전화통화를 하는 걸 듣고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너 지금처럼만 다른 사람하고 말할 때 해봐라. 세상 남자가 다~ 너 좋아한다.
가끔은 나도 다정다감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호응구를 써가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어제도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머리를 쥐어 박았다.
요즘 너무 복잡한 일이 많다는 친구에게 예의 또 그런 퉁퉁거림으로 전화를 끊고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힘들어 할때 위로가 되어주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다정다감, 달콤따뜻한 피로회복제 같은 사람이 되는 건 너무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