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2학년때, 연년생인 언니와 나는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 언니보다 10살이 많은 막내이모...
그때는 어른 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스물을 갓 넘은 나이였다.
그 이모가 월급을 타면
한달에 한번씩 소년동아(?) 같은 잡지를 사다주곤 했다.
그렇게 이모가 사다준 선물 중 잊을 수 없는
게 머리핀이다.
어느 날 이모가 언니에게만 머리핀을 사다 준 것이다.
누구 개인 소유의 선물은 그게 처음이었을 거다.
그 머리핀이 너무 예쁘고 탐나고 부러웠는데, 그걸 말 할 순 없었지만 시샘의
표정까지 감춰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다음에 이모가 월급타면 너도 꼭 머리핀 사 줄께."
그리고 이모는 정말로 반짝이는, 너무나 예쁜 머리핀 한쌍을 사
오셨다.
빨간 고추잠자리 머리핀이었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보다 더 예쁜 빨강을 본 기억이
없다.
나는 지금도 무척 머리숱이 적은 편이라서 남들이 반머리 꽂는 핀으로 머리 전체를
묶어도 핀이 흘러내려 빠지곤 하는데... 그때 이모가 사온 한 쌍의 핀은 내가 가리마를 타고 양쪽으로 나눠서 꽂기에는 너무나
컸다.
나는 어렸고, 그때는 지금보다 아마도 머리숱이 더 적지 않았을까?
그래도 굳이 앞가리마를 타서 머리를 나뉘고 그 예쁜 잠자리 머리핀을
양쪽에 하나씩 하고 학교를 갔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그만...
머리핀이 하나가 없는 거였다.
나머지 하나도 다~ 흘러내려서 머리끝에 달랑달랑
그날 나는 엉엉 울면서 학교와 집까지의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날이 저물도록
왕복했다.
중간에는 산길도 있어 어딘가 풀숲사이에 가려졌을지도
모르고.....
그날 내가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있던 딸기밭에 들어갔다
나왔던가!
아직도 나는 잠자리 모양의 악세사리가 눈에 띄면 그때의 그 머리핀을
떠올린다.
역시나 그만큼 예쁜 잠자리 모양의 악세사리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제 여러달만에 신촌엘 갔다.
길거리 악세사리 파는 곳에 유난히도 잠자리 모양의 머리핀이
많았다.
올 봄에는 잠자리 디자인이 유행을 할 모양이다.
지금처럼 저렇게 가벼운 플라스틱이었다면 내가 아무리 머리숱이 적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잠자리 머리핀 하나를 샀다.
그렇게 예쁘지도 않았고,
그때처럼 가리마를 타서 양쪽에 하나씩 짝을 맞춰 꽂는 것도
아니지만,
문득 그 오래전,
겨우 스무살의 어린 이모가 한달 동안 일해서 큰맘 먹고 사 들고 왔을 그
머리핀이 생각이 나서
잠자리 모양의 머리핀 하나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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