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잔칫집에 갔다 집에 오는 길에 모처럼 지하철을 탔습니다.
원래 땅속으로 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가급적이면 돌아가더라도 버스를 타는데
토요일 오후라 길도 많이 밀릴 것 같고, 잔치장소에서 집까지 가는 마땅한 버스도 없고 해서 할 수 없이 지하철을 탔죠.
음악을 들을까 하다가 신문을 하나 샀습니다.
마침 빈자리가 있어 앉았는데 문득 다리에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겁니다.
화들짝 놀라 신문을 젖히고 봤더니 옆자리 남자의 손이 무릎에 안고 있던 점퍼 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지더군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일단 자세 연구부터 했죠.
저같은 경우 옆에 빈자리가 많다면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앉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앉죠.
물론 팔짱을 낄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손이 어디까지 이를까, 물론 옆자리 사람의 실수일 수도 있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연구하면 민망해 할까봐 머릿속으로 밑그림만 그려봤습니다.
상식적으로 긴팔원숭이처럼 팔이 길지 않은 이상에야 옆사람 다리까지 와 닿지는 않을 것 같더군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일단 저의 화들짝한 반응에 놀란 듯 싶어서 조금 더 사태를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서너정거장을 더 가서 남자를 살펴봤더니 보통 사람의 평범한(?) 자세로 돌아가 있더군요.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리는 그 순간까지 내내 맘이 불편했고, 긴장해야 했습니다.
지하철의 절반을 돌아야 하는 거리인데다 너무너무 피곤한 날이어서 사실 자리에 앉으면 잠이라도 청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잠을 자는 여성은 왠지 치한에게 양해를 구해주는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그리고 언젠가 제 치한론에 발끈하던 남자친구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사람이 꽉 차있는 공간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치한보듯 하니 기분나빠 죽겠다나요!
아마 이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자분들도 꽤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 신문에서 아주 재미난 걸 발견했습니다.
딱이 치한이 아니더라도 지하철에서 민망하다거나 불쾌함을 느꼈음직한 일들 있죠?
그런 분들에게 민망하지 않도록 충고해 주는 기구들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문구들이 참 따뜻합니다.
작품과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런 겁니다.
◆찜가방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탈 때면 비어있는 자리 하나가 절실하시죠?
이제 날개달린 '찜가방'으로 간편하게 자리를 찜! 하세요.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가볍게 던지면 내장된 첨단센서가 자동으로 빈자리를 찾아갑니다.
패션소품으로도 손색없는 '찜가방'.
요리조리 찾아가는 가방으로 이제 여유있게 앉아 가세요.
◆성추행방지장갑
나도 모르게 닿아버리는 손. 어떻게 막을 수 없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움직여 고민인 많은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여성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괴로우셨죠? '노터치' 장갑을 착용하면 두 손이 딱 붙어버리게 되어 있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추행범이라는 오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리교정기구
업혀서 자라신 분, 양반교육을 받으신 분, 갑자기 불어난 허벅지 살에 다리가 벌어지시는 분.
그동안 지하철에서 옆사람 눈치보느라 힘드셨죠?
더 이상 고민하지 마세요. 이제부터는 '얌전이 교정기'로 정확히 한 사람 자리만 차지하실 수 있습니다. 간단한 접이식 설계로 휴대가 간편하고, 신소재를 이용하여 가벼우며, 지속적인 사용시 영구적 교정효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리 오므리고 앉기, 오늘부터 시도해 보세요.
◆다리사이 의자
안, 저기도 자리가!
쫙 벌어진 다리틈 사이로 보이는 파란 시트. 공간을 낭비한다는 생각 드시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는 휴대용 의자 '비트윈'을 이용해 보세요.
넓게 벌린 다리 사이에 간편하게 설치, 살짝 걸터앉을 수 있습니다. 통행에도 전혀 불편을 주지 않고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공간 절약 제품.
이제 서서 가지 마세요.
◆딱조아 가리개
화끈한 커플.
보고 있기 민망하시다고요? 그렇다면 특수제작된 딱조아 가리개를 이용해 보세요.
보고 싶은 장면만 골라서 보세요.
몇가지는 정말로 휴대하고 있다가 따가운 눈총대신에 웃으며 권해 드리고 싶기도 하네요^^
"혹시.... 성추행방지장갑 써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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