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세자매

약간의 거리 2004. 12. 21. 10:24


-공연 관계자 몰래 찍다-





극단 애플시어터가 2004년, 러시아 문호 안똔체홉 서거 100주년을 맞아 마련한 <안똔체홉 4대 장막전> 중 마지막 작품 '세자매'

여전히 나는 안똔체홉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가 연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보고 싶을 만한 작품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애플시어터라는 새로운 극단을 만나게 된 한해였다.

벚꽃동산에서 시작해 바냐아저씨, 갈매기, 그리고 세자매...


사망한 육군장성 쁘로조로프에게는 4남매가 있다.
교수가 되기를 꿈꾸는 맏이 안드레이와 유년시절을 보낸 모스크바를 동경하는 세자매...올가, 마샤, 이리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네들이 고향을 동경하는 모습과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고 야단하는... 정말 러시아어로 그렇게 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걸 보면서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가 우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러시아의 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은 아주 긴밀한 유대를 갖고 있다. 누군가의 생일이면 당연한 파티를 꿈꾸며 찾아오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 즐기고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너나할 것 없이 나서서 챙겨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의 주제는 <소통의 부재>다.

 


매일 이상한 소리만 하는 살룐느이,

수다스러운 육군중령 베르쉬닌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대화가 아니고

단지 한 장소에서 서로에게 끊이없이 말하고 있음에 불과하다.

2막에서던가?

안드레이의 말... 모스크바의 번잡스런 술집 같은 곳에서는 아는 이 하나 없이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다던가... 그런?이곳에서는 모두가 함께 있지만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귀가 어두워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 시의회 수위 노인에게 소리치며 말했던 것.


"내가 당신이 못 알아 들으니까 이야기하는 거지~" 하면서... 했던 그 대사는 이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보여지는 사람들의 현실은 다정하고 즐거운데도 아무도 현재를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미래를 동경한다.

200년이나 300년 후의 세상은 달라질거라고 끊임없이 얘기하는 베르쉬닌 중령이 그러하고,

교수를 꿈꾸는 안드레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바람피는 나타샤,

마샤도 그렇구,

교사생활이 늘 불만이지만 거기서 떠날수 없는, 이제는 교장이 되어버린 올가,

열심히 노동할 거라고 외치던 이리나, 그러나 현재하고 있는 일에는 늘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모스크바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군대도 떠나고, 이리나와 결혼을 약속한 뚜젠바흐가 죽고, 마샤에게 짧은 행복을 주었던 베르쉬닌도 떠나고... 언젠가는 모스크바로 돌아갈 거라는 세 자매가 그 바람도 포기했고,


그럼에도 세자매는 "살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야 한다.

 

과연 그 살아감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200년이나 300년 후 쯤 달라지는 세상?


 

 

 

**사족1: 마지막에 배우들이 인사하는 장면... 너무 멋지고 인상적임

**사족2: 1900년대의 러시아... <벚꽃동산>에서도 그러했듯이 <세자매>에서도 끊임없이 노동을 강조한다. 스무살이 되었으니 열심히 노동할 거라고... 10시쯤 침대에서 일어나 세시간에 걸쳐 옷을 입는... 그런 여자로는 살지 않겠다는 이리나와 군복을 벗고 벽돌공장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뚜젠바흐 처럼... 당시 러시아는 노동자를 동경하던 때인 것 같다. 안똔체홉의 희곡을 더 잘 이해하려면 러시아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900년대 러시아라??? 러시아 혁명이 1905년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이다...... 그러면 그들이 꿈꾸던 미래의 세상도 이와 관련이 있는 걸까?

 

흠... 공부할 꺼리만 늘어났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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