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배가 부르기도 하고, 200cc 정도만 먹어도 취해버려서 잘 먹지 않는 술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맥주를 한 500cc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상도 ^^
지금도 여전히 잘 먹지 않는 술이지만, 아마도 어제.. 맥주가 먹고 싶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거다.
맥주를 배가 터질 지경이 되도록 마시고,
맥주에 취해서 필름이 끊기도,
좀 심하다 싶게 엉엉 울어주고,
필름이 끊겼으니 기억하지 못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이 흠뻑 취한 야심한 밤에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누군가는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받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통화한 기억이 남을 것이고, 누군가는 기억나지 않을 것이고, ...
하지만 핸드폰에 발신기록이 남을 터이니 나는 나의 마음을 충분히 테스트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확인을 하는 거지.
아~
정말 유감이다.
술이 떡이되도록 마셔서 집에도 너무너무 힘들게 오고,
씻을 기운도 없어서-나는 왜 술이 취하면 기운이 빠지는 걸까?- 그냥 자버렸는데...
집에까지 걸어오는 동안 너무나 말짱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손톱만큼도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거다. -그래서 괜히 엉뚱하게 전화 받은 사람은 미안~^^-
'그냥 좀 해보지 그래.' 라고 한 쪽 마음이 말하면,
'왜?' 하고 다른 쪽 마음이 말하는 거다.
나의 마음이.
흠...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2006년 11월.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지우기까지 딱 10년이 걸려버렸다.
만으로 꽉꽉 눌러 채운 10년.
음..
좀 아쉽기도 하고, 약간 섭섭하기도 하고,
이제 정말로 또 한 세상이 지나가 버렸네.
이런 느낌이구나!
슬프지 않으며, 약간 쓸쓸한 기분...
엉엉 울어줄 지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맥주를 진탕 먹고 대성통곡 쯤은 아니어도, 좀 오버한다 싶게 슬퍼해주며 보내려고 했는데... 내가 미처 내 마음을 알기 전에 다 떠나가 버렸나보다.
-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먹어?
- 헤헤.. 그냥... 좀 먹을 일이 있었어.
- 북어국 끓이려다가, 홍합도 해장될거 같아서 ..
- 어, 시원해. 맛있어.
언제는 딸년 해장국도 끓여줘야 하냐고 타박이던 엄마가 오늘 아침 따라 참 유난히도 나붓나붓하시다.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파 죽겠는데 조카는 자꾸만 퍼즐을 맞추라고 채근한다.
엄마랑 결혼식장에 가서 뷔페를 먹고, 기차를 태워 대구로 떠나 보내고, 조카를 집에 데려다 놓고, 충무로에 가서 영화를 보고, 밤 9시 명동에서 삼계탕을 먹을 즈음이 되니 술이 깨는 듯 하다.
마음이 디게디게 홀가분하다.
사랑에 대한 예의를 다 한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