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늦은 밤 옆집에 불이 나서 허둥지둥 피난을 나왔는데
곧 소방차가 당도했고, 다행이도 불은 더이상 번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밖에서 시간을 떼우게 되었는데
정신 차리고 살펴본 자신의 꼬락서니가
겨울날임에도
발가락이 나오는 슬리퍼에 반바지 달랑 집 열쇠만 들고 나와서
주머니에는 땡전 한푼 없고,
당장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보려 해도
늘 지니고 다니던 핸드폰 조차 손에 쥐지 않았더라구.
그때 새삼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중에
정말로 소중한게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말이다.
곁에 있을 땐 그것이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았고
보잘것 없었고
나에겐 별로 쓸모조차 없는 것들인지 알았는데
요즘 들어서 자꾸만 눈에 띄고 거슬리는 것들이 있다.
언제 내가 저런 것들에 의미를 부여 했던가!
하지만 내 것이 된 순간부터 의미를 부여하고 간직하고자 했던 것들은
진즉에 내것 아닌 것이 되었었다.
며칠을 아까워했고, 때때로 아쉬웠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잊고 살 수 있는 건
굳이 없어서도 살 수 있는 것이었으며
대체품이 너무나도 풍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것이 된 이래 한번도 아껴 본 일이 없던 것들이
새삼 소록소록 가슴을 저미기도 하는 건
정작 의미를 부여한다는 일이 아무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던가!
'꽃'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본다.
이혼을 당했고
청혼했다가 거절 당했다는 거.
누군가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누군가는 상처는 입었지만 덮을 수 있는 것이고
누군가는 세상의 많고 많은 일 중의 하나로 스쳐가기도 한다.
시인은 "꽃"이라는 예쁜 단어로 미화해 두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일이
생에 매우 중요한 일이며
아름다운 일 같았지만
그래, <의미>라는 것도 그다지 의미있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거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닌 걸.
그렇게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많은 것들에게
조금씩 나를 덮고 잊혀지게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