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첫 눈 오는 날

약간의 거리 2005. 12. 14. 11:54

첫 눈이 오는 날,

우리는 함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첫 눈이 내리는 날 전철역을 열심히, 땀이 나도록 뛰었다.

부평까지 가는 직행 열차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됐다.

낯선 그 역 앞에서

무수히 늘어선 공중전화박스

눈이 쌓인 차가운 나무의자,

주변을 서성이는 낯선 사람들

 

그리고 드디어 그가 나타났다.

나와는 다른 역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

 

그날 우리는 많이 기다리게 한 것에 - 사실은 각자 많이 기다렸으면서 - 서로에게 미안해 했다.

 

 

 

첫 눈이 오는 날,

우리는 함께 있었다.

 

누군가 내 목덜미에 눈을 집어 넣었고,

그게 눈 싸움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내게 눈을 집어 넣은 사람을 공격했다.

 

호호

손을 불어가며 계속 눈을 뭉쳤다.

내가 던진 눈은

그의 어깨 언저리에도 가 닿지 못했다.

 

부스스...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첫 눈이 녹아버린 것을 잊었다.

 

눈 싸움의 흔적도 사라졌다.

 

올 겨울의 첫 눈이 내렸었다는 기억만이 남았을 뿐이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

 

언젠가 겨울 첫 눈이 내리던 날,

누군가와 눈 싸움을 했었다고...

 

2005년 겨울이 아닌,

몇년전, 어느해, 겨울....

 

그렇게 기억하게 될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