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가톨릭신자들은 상시 고해성사를 하지만 일 년에 두 번, 부활을 앞둔 시기와 성탄을 앞둔 시기에는 고해성사를 의무로 하고 있다.
고해성사 후 사람들의 표정 변화, 그런 것을 세심하게 묘사하게 그것이 엄청난 은총 내지는 기적과 같이 표현하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기쁨과 은총은 그렇지만,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는 그렇게 은총으로만 와 닿지는 않는다. 고해는 말 그대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고해 성사에는 단계가 있는데 성찰, 통회, 정개(회심), 고백, 사죄, 보속이다.
우선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도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나면 고해소에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고 사죄를 받고, 이후 보속을 하는 것이다.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단계는 사제에게 되를 고백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위의 여섯가지 단계를 잘 밟아가다보면 사실은 성찰을 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인가?
'누군가가 크게 다툰적도 없고, 누구를 미워한 적도 없고, 딱히 그렇게 잘 못 산게 없는 데 뭘 고백해야 하지?' 하는 경우도 있고, '아침 기도를 빼 먹었네.'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이는 마음에 잠시 스쳐간 갈등 같은 것도 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문에 내가 지은 죄를 낱낱이 알아내는 일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나면 뉘우치며 반성을 해야 한다. 이때 많은 변명들이 올라온다. 그 사람이 내게 먼저 이런 행동을 했는데 그럼 나는 어쨌어야 하는가, 그날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등등
좌우당간, 어찌되었던간 암튼 반성을 하고 나면
죄에서 돌아서야 한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맘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지은 많은 죄들의 대부분은 사실 바로 내일이면 다시 반복될 거라는 것이 너무나 뻔한 것들이다. 그런데 나는 다시 지을 줄 알면서도 '일단 그러지 않겠다고 둘러대야 하나? 나 정말 안 할 자신이 있나?'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그래도 노력해보자, 맘을 먹었으면 고백을 하러 간다.
사제를 만나서 내가 성찰하고 회심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어디까지 말을 해야하나? 너무 길면 안되지 않을까? 내가 이런 죄를 짓는 걸 신부님이 알게 되는 게 너무 부끄러운데 어떻게 하지? 다른 성당에 가서 모르는 신부님께 고해할까?
등등
고해소에 들어가는 것부터, 고해소에 들어가서 고백을 하는 방법까지 무수히 많은 고민과 갈등이 일어난다.
내 앞의 기다리는 줄이 조금씩 줄어들 때 가슴이 얼마나 콩닥콩닥 뛰는지 모른다.
머릿속으로 고백하는 장면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그려보고, 문장을 연습하는 데에도 어떨때는 생각한 죄를 다 말하지 못하고 나올 때도 있다. 메모지에 요약을 해서 들어가 놓고도 그걸 놓칠 때도 있다.
그렇게 고백을하고 사제의 사죄경을 듣고 보속으로 받은 것을 행하면 고해성사가 끝난다.
하지만 사죄경을 듣고 고해소의 문을 나설 때, 내가 아직 보속을 하지 않아도 맘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다.
신자로 살아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고해를 할 때마다 이 모든 과정과 이 모든 두려움과 고통은 반복된다. 그것은 어쩌면 죄를 짓고 사는 인간이 겪는 아주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렇게 고해성사를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기간이 되면 어찌나 맘이 불편한지, 이런 저런 책을 사서 공부하고 글을 찾아서 읽고 한다.
올해는 3월 초 바티칸 뉴스를 통해 접한 3월 교황 기도지향 “인간은 고해성사를 통해 비참에서 자비로 넘어갑니다” 라는 글과 『고해성사』 라는 책을 읽었다. 특히 이 책은 고해를 준비하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 어느때보다도 용기를 주었고, 나를 보다 잘 성찰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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