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

예를 들어 말해보아요

약간의 거리 2018. 11. 19. 00:03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해서 여행을 하거나, 영화나 책을 보거나, 취미 활동을 한다거나 등)

- 최근에 본 영화가 있나요? 기억에 남는

- 셔터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다운로드해서 봤어요. 어떤 정신병원에서 미스테리한 사건이 벌어져요. 두 명이 남자가 그 사건을 풀어 가는데 그 사건을 풀기 위해 작은 다른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미스테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영화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스토리가 아주 탄탄해요.

- 그 영화의 어떤 점이 맘에 들었어요?

- 음.. 이야기가 아주 단순할 수 있는데 스토리가 잘 짜여졌어요.

- 스토리가 잘 짜여진 이야기를 좋아하나요?

- 그렇죠. 거기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가 나오는데 이야기 자체가 좋아요. 특별히 배우가 뭘 하지 않아도 극이 훌륭하죠.

- 때로는 극이 엉성하지만 저 배우가 작품을 살렸네,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작품은 별로인가요?

- 작품을 위해서 배우가 너무 튀지 않고 잘 받쳐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 극작가나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그런데 배우의 입장에서는 어때요?

- 그렇네요. 저희 연출님이 극을 쓰시는데 그분과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그분의 입장에 맞춰서만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한테 너의 정의는 뭐야? 하고 물으시곤 해요.

- 음.. 그럼 뭐라고 이야기하세요?

- 그게 저는 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 음..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어떤 여행을 좋아하세요?

- 걷는거요. 많이 걸어요.

- 어떤 곳을 걸어요?

- 현지인처럼 녹아드는 것이요

- 현지인처럼 녹아든다는 것은 어떤 거에요?

- 그런 느낌을 갖는 거죠.

- 그럼 어떨 때 내가 현지인처럼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그랬던 경험이 있으면 하나만 들려줄래요?

- 남미를 갔을 때였는데 작은 구두방이 있는데 그 옆에서는 꽈배기를 만들어요

- 구두방과 같은 집에서요?

- 네 그러니까 구두를 닦고 구두약이 묻은 손으로, 물론 손을 씻기는 하지만 구두약이라는 게 그렇게 잘 닦이는게 아니잖아요. 그 손으로 반죽을 돌려서 꽈배기를 만들어서 팔아요. 그런데 그게 더러워보인다거나 하지 않고, 익숙한 거죠. 게다가 그 꽈배기 집 바로 뒤에서 바로 빵을 구워서 파는 베이커리가 있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저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여기는 그렇구나... 이런 거에요.

- 아, 처음보다는 훨씬 더 어떨 때 영감을 얻는지 알 것 같아요. 사실 아까 영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사실 뭔가를 구체화하는 것은 내가 정말 어려워하는 일이다. 그런 내가 자기 스스로가 구체화하지 않은 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만드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방송리포터를 할 때 왜 힘들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해서 여행을 하거나 영화를 본다고 누군가 말했다면, '그렇구나!, 영감을 얻기에 그것도 참 좋은 방법이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고. 그러니까 인터뷰 분량을 아직 하나도 뽑아내지 못했는데 우리의 대화가 끝난 것이다. 뭔가 더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데 모든 이야기가 끝난 것 같은데 대체 뭘 더 물어봐야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대로 방송국에 돌아와보면 분량도 없지만 딱히 나눌 스토리도 없기 일쑤.

그러니 방송국 문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던 것 같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지 않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 예를들면, 누구와 누군가가 썸을 타고 있는 것 등등 아직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들을 나는 벌써 눈치채고 있기가 다반사였다. 관심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정말 신기하고 나도 그런 내가 궁금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알고도 모른척을 한다고 오해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뭔가를 물어보면 알면서 왜 물어보는 걸까, 취조하는 거야? 하면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고, 그러다보니 또 묻지 않게 되고, 뭐 그랬다.


그냥 나는 막연한 감, 그러니까 굳이 성격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MBTI의 N성향(직관)으로 뭔가를 알아채는 일이 많았고, 그만큼 그것을 구체화하는 능력이 떨어졌던 것 뿐이다. 타인에게 엄청난 촉을 세우지 않아도 눈치챌 만큼 예민한 사람이었거나, 혹은 나도 모르게 엄청난 촉의 안테나를 항상 올리고 살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구체화하지 않는 것이 뭐가 문제인 걸까?

사실 그게 문제는 아니지만 또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구체화가 때로는 구체화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이 문제가 아닐 때는 그냥 그대로 살면되는 것이지만 문제가 될때는 살짜기 방법을 바꿔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어디에나 그렇듯이 약간의 유연성이 필요한 건데 평소에 그걸 해보지 않은 사람은 구체화하는 방법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퍽이나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때로 이런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영혼이 없는 것처럼 전달이 되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냉소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는 일이 종종 있으며, 그 사람의 선호가 타인에게 분명하지 않아 존재감이 약해지기도 한다. 타인에게 이 사람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달까? 그러면 원하는 배역에 캐스팅 될 가능성이 아무래도 낮아질테니 일정 부분은 나의 생각이나 마음을 좀더 구체화해서 표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구체화해서 이야기하기의 방법 중의 하나는, 예를 들어 말하기이다. 과거의 상황,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장면 등을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한다면 내가 설명을 하기도 쉽고 상대가 이미지화하기도 쉬워서 전달이 잘 된다.

나는 이 방법을 어떤 성향으로 인해서 구체화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아닐 때에도 가끔 사용한다. 예를 들어서 아이들과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너는 꿈이 뭐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보다 '20년 후라고 상상을 해봐. 그러면 몇살이지? 자, 그 어떤 날이 사진이 찍힌 거야. 지금 그 사진을 보고 있어. 어떤 사진인지 말해줄래? 어디에서 찍힌 건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주변에 누가 있는지 등등' 그러면 그 사진속의 나의 기분, 나의 직업, 내가 처한 상황 등등이 정말 술술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의 시작에는 내가 구체화가 필요하구나! 라는 자각이 있어야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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