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익숙한 것에의 두려움

약간의 거리 2008. 7. 12. 23:24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깬다.

 

비 온다... 하고는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다시 스르르 잠이 든다.

 

아침

맑다.

새벽에 잠을 깨우는 비는 이미 그쳐있다.

 

 

아주아주 오래 전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이 깨는 새벽이면

행복하면서도 걱정이 됐다. 아침이 되었을 때 비가 그쳐있을까봐... 그렇게 되면

그리고 역시나 비가 그쳐있는 아침이면

그 안타까움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조금 오래 전

대문을 나서며 젖어있는 땅을 보고서야 밤새 비가 내렸다는 걸 알게 됐다.

'비'라는 건 아주 무의미했다.

창문밖 전신주를 늘상 보면서도 '아직도 전봇대가 땅위에 있어?'하고 누군가에게 물었던 것처럼.

그렇게 그것이 내리는지 내리지 않는지에 무감각했다.

그리고 어느날엔가 무감각해져버렸다는 걸 깨닫고는 슬펐다.

 

 

이제 다시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어떤 날은 벌떡 일어나 앉아, 채 눈이 떠지지 않아 눈을 감은채 귀로만 그 소리를 듣는다.

어떤 날은 여전히 잠을자고 있는 채 잠시 의식만이 빠져나와 빗소리를 듣고는 행복해 한다.

비가 와서,

그리고 빗소리에 잠이 깨서...

그 뿐이다.

 

아침이 되니 창밖이 맑다.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깼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다.

땅까지 말라있는 날이면

새벽에 빗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꿈이었는지 진짜였는지 잠시 고민을 한다.

꿈이었다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제 잡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그냥 그때그때의 상황을 즐거워하면 그뿐인 걸.

지나간 것에 아쉬워할 이유도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염려할 이유도 없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낄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걱정이 된다...

 

익숙해지면 안되는데...

익숙해지면 안되는데...

 

오늘 밤에도 최면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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