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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후'라는 원근법

약간의 거리 2005. 4. 26. 11:20


 

 

 

이런 생각을 해봐.
십년 후에 내가 너에게 전화를 거는 거야.
설레임도 슬픔도 지나간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 이유는 단 한 가지이지.
그저, 보고 싶어서.

그래, 십년 후.
어느 봄날이 좋겠다.
왠지 고궁이 가까이 있는 장소가 좋을 것 같아.
시간의 위대함과 허망함이 한데 있는 그곳.
고궁이 보이는 장소라면
생각없이 맑게 웃으며 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경복궁이 보이는 삼청동의 그 카페가 좋겠다.


그때 내 얼굴에서는 젊음을 찾을 수 없겠지.
너도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테고.
인생에 대한 환상은 저만큼 물러나고,
소금처럼 짠 진실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겠지.
그때는 각자 살아온 세월로 헤어진 세월을 용서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십년 뒤에도 우리는 외로울지도 몰라.
지금처럼 여전히.


그렇다면 십년 후에 너를 만나는 것과
지금 만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다른 걸까.
십년 후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한 원근법인지도 몰라.
예나 지금이나 인생은 외로운 건데,
내가 너에게, 네가 너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지혜의 영화음악 <영화처럼 사는 여자>-

 

 

 

 

 

 

난... 서른이 되면 죽을 것 같아.

 

왜 그런 생각을 해?

 

아니... 그게 아니구... 자연스레 죽게 될 거 같다구.

 

십년이나 이십년쯤 지난 후에 갑자기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찾았는데...

그때 네가 없으면 난 너무 슬플거야.

그러니까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야 해

 

 

 

************

 

 

나랑 한 약속 기억해?

 

무슨 약속?

 

십년이나 이십년 쯤 지난 후에 나를 찾을 거라고 했던 거

 

그럼

 

정말 그때 나를 찾을 거야?

 

응. 그러니까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해. 마음 아프지 않게...

 

그런데 왜 십년, 이십년 지난 후에 만나야 해.

지금부터 십년, 이십년 동안 계속 보면 안되는 거야?

 

 

왜?

 

그냥... 그때는 마음 아프지 않을 거야.

 

 

 

 

 

십년 후 라는 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무의미한 원근법...

 

 

 

 

 

 

십년이나 이십년 쯤 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

십년이나 이십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정말 다시 만나게 될까?


 

왜 십년, 혹은 이십년이 지난 후에 만나야 할까?

 

지금은 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더라도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지금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십년이나 이십년이 지난 어느 날엔가

문득 보고 싶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왜, 지금

 

반드시 헤어져야만 하는 걸까?


 

그때는 보다 더 성숙해져 있을 거니까.

아니, 어쩌면

 

십년이나 이십년 이라는 말은


곧 올 것 같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또 오지 않는다 하여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시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